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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이버 망명, 우리 역사가 넘어간다


지난 2009년 한국 사회에 때아닌 'G메일' 가입 열풍이 불었다. 당시 검찰이 MBC PD수첩 제작진을 수사하면서 이 프로그램 작가의 e메일을 공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수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국가기관이 나의 e메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유로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의 G메일로 네티즌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다. G메일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5년 5월. G메일을 키워준 것은 다름 아닌 2009년의 사건이다.

사이버 망명은 전에도 있었다. 2007년 정부가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자 국내 블로그·커뮤니티 운영자들이 해외 사이트로 옮겨간 것.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의 사이버 망명 바람은 G메일 등 해외 인터넷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인터넷, 국가·개인 역사 기록장소

2014년 현재도 사이버 망명 때문에 난리다. 검찰 등 수사당국이 메신저 등을 상시 감독하겠다고 한 것이 단초가 됐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텔레그램'은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죽했으면 텔레그램 본사에서 한국어 버전 개발을 도와줄 번역가를 찾기 위해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사실 한국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 중 하나'가 한국의 e메일·메신저는 '언제든 털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과 2009년 사이버 망명 사태 이후 '비밀 아닌 비밀'이 됐다. A기업은 업무 관련 서류 등을 주고받을 때 반드시 G메일을 쓴다. B회사는 부원들 간에 정보를 교류할 때 반드시 페이스북이 운영하는 메신저 '와츠앱'을 사용한다. 필자 역시 와츠앱을 사용하고 있는데 친구로 등록된 사람들을 보면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기업 임원 등이 적지 않다. 이 이면에는 운영 주체가 외국 기업이고 서버 역시 외국에 있으니 한국의 인터넷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사이버 망명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 사유 등으로 모국 법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해외로 인터넷 서비스의 주 사용무대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한국 사회의 사이버 망명은 여기에 여러 요소가 얽히면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의 사이버 망명객 규모에 대한 구체적 수치는 없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이미 국내 메일·메신저와 외국 메일·메신저를 동시에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국민들이 사이버 망명을 했거나 잠재적 대상자일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이버 망명이 국내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외국에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시각에서 인터넷은 이제 한 국가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수많은 나라의 대소사가 인터넷에 남고 내 가족의 기록과 친구와 주고받은 일상의 기록들이 인터넷에 고스란히 축적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산재한 빅데이터를 돌리기만 하면 한 국가의 근대사뿐 아니라 나와 가족의 일상까지 드러난다.

사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반(反)구글' 정책을 표방하는 이면에는 역사학적 이슈가 있다.

경솔한 발언·역차별 규제는 독

유럽에서는 구글로 대변되는 미국 정보기술(IT) 업체가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유럽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구글에 넘겨줬다는 위기의식이 반구글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은 기술적 장치가 아닌 한 나라 및 개인의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술을 넘어 철학과 문화, 그리고 종국에는 역사다. 사이버 망명은 단순히 인터넷 장터를 바꾸는 것을 넘어 나의 기록과 한국의 역사를 옮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이버 망명을 부추기는 수사당국의 경솔한 발언·행동과 우리 인터넷에만 적용하는 역차별 규제는 한국 사회 및 경제에 치명적인 독이다. '경제적·군사적' 식민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 나타날 '디지털 식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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