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에 모인 수많은 취재진은 금융연수원 정문을 뚫어지게 주목했다. 박 당선인과 함께 총리 후보자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5년 전 인수위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승수 총리를 바로 옆에 두고 지명했다. 삼삼오오 기다리던 기자들은 “결국 어떤 언론사도 총리 특종을 하지 못했다”며 자조 섞인 한탄들을 내놓았다.
1시 50분께 총리후보자가 발표될 금융연수원 본관 메인 브리핑룸 근처 행정지원실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김 위원장은 방향을 헷갈린 듯 잠시 방황하더니, 브리핑룸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갔다. 매일 보는 인수위원장의 출현에 모두들 ‘그러려니’하며 지나치기 바빴다. 평소처럼 붙잡고 질문하는 기자들도 찾을 수 없었다.
불과 10분 후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바로 오른편에 세우고 총리 후보자로 전격 지명했다. 전 취재진이 허를 찔린 순간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근거리에 있던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총리 후보자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일부 언론은 다른 인사들을 총리후보자로 가정하고 프로필을 작성하고 있기도 했다.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하마평에 오른 다른 인사의 집 앞에 찾아가 진을 치고 있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박 당선인의 입에서 ‘김용준’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곳곳에서는 허탈한 탄식들이 쏟아졌다.
실제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장에 이어 인수위원장까지 맡았기 때문에 유력한 총리 후보로 분류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인수위에서 중책을 맡았던 인사는 내각으로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평소에 김 위원장이 보여준 ‘허허실실’ 전략도 취재진을 방심하게 한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그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추워” “비켜보라” “고생 많다” “대변인에게” 등 짤막하고 허탈한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인수위의 현안을 꿰뚫고 있다는 인상도 주지 않았고, 위원장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적도 없다.
박 당선인 측의 핵심 관계자들은 이번에도 “전혀 몰랐다”며 발뺌하기 바빴다.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은 “전혀 몰랐다. 하늘에 맹세코 여기서 알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총리후보자 인선은 수일 전에 이미 확정됐으며 박 당선인 측 주변으로는 철저한 보안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들은 최근 기자들의 동향을 살피며 보안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도 했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남은 부총리와 장관 인사 정보 역시 철저한 박 당선인의 보안을 뚫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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