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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학, 그 위대함에 대하여


지난주 임권택 영화감독의 '화장(火葬)' 시사회에 갔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불치 뇌종양 아내를 돌보며 피폐해가는 중년 남자의 실존적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국민배우 안성기의 도덕과 욕망을 오가는 절제 미학의 연기가 압권이다.

화장이 특히 필자에게 다가오는 것은 30여년 전 강원도 원주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을 소환시켰기 때문이다. 기와집에 살던 우리 가족은 집터를 매입해 신축한 양옥집으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드디어 새집을 장만했다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교편을 잡던 아버지는 태백·황지 등의 오지 학교에 전근 가기 일쑤였고 주말이면 어머니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저 멀리 '빠앙'하고 기적을 내며 원주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바라보고는 했다. 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멀리 계셨고 어머니는 내게 큰 바위 얼굴 같은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뇌 기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지됐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했다. 3년간 서울대병원 등 온갖 병원을 전전했고 용하다는 무당이 집에 와서 작두 춤을 추기도 했다. 화장에서 뼈가죽만 남아 죽음으로 다가가는 아내가 내 어머니였고 대소변부터 목욕·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남편은 내 아버지였다. 가끔 정신이 돌아오곤 했던 어머니는 말을 못하고 입을 벙긋하며 내 이름을 부르고는 했다.

경험 공유 통해 공감 능력 확대

집안은 거덜났고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새 장가들면서 새 식구가 된 동료 여교사는 우리 삼형제에게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희망'이었다. 우리 가족과 이전부터 알던 고마운 분이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이복 여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나는 이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에서 죽음·본능·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자전적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 서사를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원초적 욕망이다.

그러던 터에 아버지 시점으로 쓴 김훈의 화장을 접하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나와 세상이 공감하며 연결되는 기분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작가 김훈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인 의사에게 부탁해 실제 환자를 곁에서 수십차례 지켜봤다고 말했다. 문학이 찰나적인 흥밋거리로 변질되기 쉬운 이 시대에 문학의 소생을 확인시켜준 보기 드문 탁월한 작품이라는 게 이상문학상 선정의 변이다.



문학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질까. 나와 타자, 더 나아가 세상과의 진정한 교류가 단절되지 않을까. 문학은 동서고금의 인류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상상력을 통한 인간의 공감 능력 확대를 통해 우리의 정신적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는 스마트폰은 인간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스마트하게 인간을 구속하고 있다며 표피적으로 흐르는 현대 세태를 일갈했다.

전자책으로 읽기 쉬운 장르소설, 판타지 소설이 판치는 요즘에 인간 영혼과 정신에 천착하는 순수 본격문학의 부재가 더욱 커 보인다. 러시아민족의 자긍심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에서 우리는 공산혁명 이전의 인간 억압, 차별·모순의 러시아 제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위대한 작가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그리스 비극 등 고전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의 치열한 인생 역정에서 작품을 이끌어낸다. 도스토옙스키도 샤를 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서클에 가입했다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 직전 황제의 은총(?)으로 살아남았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사회 통합 첫 걸음

문학이라는 언어예술은 어느 때보다 사회 통합을 위해 공감이 요구되는 시대에 그 중요성이 크다. 시들해지는 한국 경제에 구조개혁이 화두다. 그중에서도 비정규직·정규직으로 양분화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목소리가 크다. 88만원 세대, 1,0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기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이들 문제의 심각성에 우리는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저성장 고착화·양극화로 가난이 대물림되는 시대에 이들의 현실을 천착하는 문학 명작 하나가 서로에 대한 진짜 이해와 공감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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