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이 선고된 사건에 있어 1ㆍ2심에서의 오심을 바로잡을 길이 없어진다”며 홀로 반대 토론에 나섰던 의원 때문이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법안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히고, 동료 의원의 동의를 이끌어낼 줄 아는 출중한 언변과 열정은 지지 여부를 떠나 국회의원이라면 의당 존중 받아야 할 태도였다. 그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그런 그가 불과 5개월여 만에 놀랍게도 변했다. 그 스스로도 반박하지 못하는 명백한 선거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는 그를 두고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충격’과 ‘공포’그 자체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때 진보의 ‘아이돌’로 불렸던 그가 왜 그렇게 갑작스런 변신을 했는지 속사정을 일일이 알기는 어렵다. ‘자기 조직의 수장(이석기)을 지키기 위해 대신 독배를 마신 것’이라는, 조직폭력배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해석이 있기는 하다. 이 전 대표는 그 속내를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최근 “침묵의 형벌을 받겠다”는 짤막한 글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전 대표가 이제와 침묵을 택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의 최근 행동들,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모습은 진보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점에서 그의 침묵은 비겁하다.
통합진보당은 14일 강기갑 원내대표의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보수세력 중 일부는 진보의 몰락을 고소해한다. 그러나 진보 없는 보수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와 같이 불안하다는 점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강 비대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사분오열에도 추락한 진보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았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진보의 지위를 고수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상 그 일은 요원해 보인다. 진보는 이제 이정희를 버려야 할 때인 것 같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