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자리한 마리나 델 레이 항만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이상한 광경이 펼쳐진다. 노란색 법의를 걸친 스님들이 커다란 통을 둘러싸고 염불을 하고 큰 절을 한 후 통에 있는 것들을 바다로 쏟아낸다. 통 안에는 수 백 마리의 피라미 떼들이 있는데 물고기들을 바다로 돌려 보내는 '방생 의식'을 통해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개발경제학 및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인 딘 칼런 예일대 교수와 컬럼비아대 제이콥 아펠 교수는 스님의 이 방생 의식에 대해 좋은 의도에서 비롯됐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물고기를 구제하려면 어부들이 하루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훨씬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빈곤 퇴치 문제에 대해서도 좋은 의도와 선량한 마음 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빈곤 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억 명이 매일 2.5달러의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선진국들이 더 많은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투자를 했음에도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으니 돈만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저자는 '햇볕'(더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는 시각)도 '압박'(기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아닌, 행동경제학을 통해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이는 전통경제학이 당연하게 여겨온 인간의 합리적 결정이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인간의 감정을 이용해 행동 자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넛지(Nudge)적 해법'을 말한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란 국제빈곤아동구호기구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체는 한 달에 30달러 정도를 기부하면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의 사진과 그 아이가 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으며 이전보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 저개발국의 농업 문제에도 넛지적 해법이 위력을 발휘한다. 적당량의 비료를 줄 경우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데도 습관 때문에 비료를 쓰지 않는 농부들을 위해 고안한 게 비료구매티켓이다. ICS아프리카라는 국제비영리기구는 추수가 끝나는 시점이 되면 케냐의 농가로 찾아가 비료로 바꿀 수 있는 쿠폰을 구매하라고 알려줬는데, 쿠폰에는 다음 농사를 시작할 때 무료로 비료를 배달해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추수철에는 농부들이 주머니도 두둑한데다 내년에도 농사를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비료를 구매하는 습관이 배 있지 않던 농부들이 비료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바로 이 때이며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저개발국의 부진한 농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료구매티켓을 구매하고 비료를 사용한 농부들이 늘면서 수확량도 1.5배나 늘었다. 빈곤층을 위한 대출 프로그램에도 행동경제학은 위력은 이어진다. 신용불량자 가운데 일부를 무작위로 우량 등급으로 바꿔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자 이들은 직업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도 향상됐다. 신용 대출이 빈곤층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적인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저자는 마치 설계사처럼 빈곤의 문제를 건강과 시간, 행복, 직업 등 전면적으로 살피면서 넛지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특히 빈곤 퇴치를 위한 구호기구들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 돈을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점검하고,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기구에 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비판적으로 기부의 중요성만 강조했던 기존 저서들과 달리 냉정한 비판을 바탕으로 선량함을 실천하라는 저자의 충고는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요즘 더욱 새겨들을만하다.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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