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야권이 급속히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3개월여 동안 혼돈에 휩싸였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등 정부세력은 야권의 '쿠데타'라고 극렬히 반발하고 있지만 야권으로 넘어간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축출된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을 상징하는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를 주축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친러·친유럽 세력 간 분열은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최고의회(라다)는 22일(현지시간) 최고 권력기관임을 자임하며 야누코비치를 축출하고 그가 거부했던 대통령 권한축소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권 지도자 비탈리 클리츠코는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KO패"라고 선언했다. 경찰을 관장하는 내무부도 시위대 편에 섰고 군은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수도를 장악한 시위대는 이미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한 상태다.
최고의회는 또 2년 반 동안 복역 중이던 티모셴코 전 총리의 석방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로이터통신은 그의 석방과 야누코비치의 축출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으로 방향을 튼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4년 '오렌지 혁명'을 주도했던 티모셰코는 총리 재직시절 직권남용죄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EU는 지난해 11월 결렬됐던 우크라이나 협력협정 체결 조건으로 그의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석방 직후 키예프 독립광장에 휠체어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티모셴코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는 오늘 끔찍한 독재자와의 관계를 끝냈다"면서도 "야누코비치와 주변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해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키예프에서 도피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데다 친러 성향인 우크라이나 동부도 의회를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여 우크라이나 내분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동부에서 열린 지방의회 연합대회에 참가한 친정부 성향 의원들은 최고의회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동부 주지사들은 의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2일 이곳에서 열린 지방의회 연합대회에서 연설할 예정이었으나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누코비치를 지원해온 러시아도 강력히 반발했다. 우크라이나의 협력을 지렛대로 삼아 '유라시아 연합'을 통한 소비에트연방의 재건을 노리던 러시아에 야누코비치의 실각은 뼈아픈 실책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날 독일·프랑스·폴란드 외무장관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불법 극단주의자들이 키예프를 점령했다"며 EU의 중재를 주장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20억달러 규모의 차관 2차분 지원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혀 경제적 압박에 나섰다.
반면 서방국가들은 시위대가 주도하는 새 정부 구성을 일제히 지지하고 나섰다. 미 백악관은 티모셴코 석방을 환영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프랑스·영국 외무장관들도 새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EU와의 협력을 강화한다 해도 최악인 우크라이나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EU와 미국이 추진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은 러시아의 차관과 달리 혹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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