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가 150㎞를 던지냐. 아니잖아. 맞출 수 있어. 이것은 실력하고 무관해.” 야구국가대표 출신 안희봉(37)씨가 빙 둘러서 있는 학생들에게 호통을 친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던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고 벤치에 앉는다. “서울대, 허이. 서울대, 허이. 서울대, 파이팅!” 지난 6월30일 오후4시 서울 성동구 덕수고교 운동장에서 서울대와 덕수고의 야구 연습경기가 펼쳐졌다. 1대4로 끌려가던 서울대가 3회 1사 1ㆍ2루의 득점 기회를 잡았다. 3루 주루코치로 있던 안희봉씨가 왼쪽 손목을 가볍게 두드리는 사인을 보낸다. 타석에 있던 윤영준(체육교육과 3)이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배트에 맞은 볼은 바운드가 크게 되며 1ㆍ2루 사이로 굴러갔고 덕수고 2루수가 이를 놓치며 서울대 주자 두명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경기에서는 5대9로 졌지만 ‘만년 꼴찌’ 서울대가 달라졌다. ‘무조건 치고 열심히 달려라’의 동네야구 수준이었던 서울대에 작전이 도입됐다. 치고 달리기, 번트, 도루 등 다양한 사인이 바쁘게 오갔다. 서울대 야구부의 임시 코치를 맡고 있는 안희봉씨는 “선수들이 발이 빨라서 일단 살아만 나가면 득점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지금까지 점수를 내는 작전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콜드게임 패배의 수모를 겪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1977년 창단한 서울대 야구부는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로 꾸려졌다.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운 특기생 선수가 없어 실력은 중학교 야구부 수준에도 못 미친다. 공식경기 통산전적 1승1무244패. 한국스포츠 사상 최다인 199연패 기록도 갖고 있다. 10경기 가운데 8경기 꼴로 콜드게임으로 진다. 대학야구에 알루미늄 대신 나무배트 사용 규정이 도입된 2000년 이후 9년 동안 팀에서 홈런을 친 선수가 한명도 없다. 감격의 순간은 딱 한 번. 2004년 9월 대학야구추계리그에서 광주 송원대를 상대로 2대0 완봉승을 거뒀을 때 감독과 선수가 모두 울었다. 199연패 끝에 올린 첫 승이었다. 야구광인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은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훈련하는 학생들을 위해 야구부 연습장에 야외 조명등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런 서울대 야구부가 다시 한번 ‘꼴찌의 반란’을 꿈꾸고 있다. 상대는 대학 라이벌이자 아마추어 야구팀인 일본 도쿄대. 서울대와 도쿄대는 매년 정기 교류전을 치르다 올해부터는 격년으로 맞붙고 있다. 앞서 서울대는 3번 모두 콜드게임으로 졌다. 7월3일 오후1시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리는 4회 친선 교류전을 앞두고 서울대 고참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서울대의 에이스인 일본인 학생 우곤 다이스케(경영학과 4). 일본과 호주에서 중ㆍ고교를 다니며 야구를 정식으로 배운 그는 투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올해 도요타에 입사해 서울대 야구부를 떠나게 되는 그는 “마지막 대회이니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반인 선발투수 배상현(조선해양공학 4)도 “제구가 잘 되니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9년 동안 무보수 감독직을 맡고 있는 체육교육과 86학번 탁정근(43ㆍ서울과학고 교사)씨는 “콜드게임으로 지지는 않겠다”고 조심스럽게 출사표를 밝힌 뒤 “도쿄대에 승리하면 연간 800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한 지원을 받고 있는 야구부에 도움의 손길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기면 학교 측에 무엇을 부탁하고 싶냐고 묻자 “먼지가 펄펄 날리는 야구부 운동장에 잔디를 깔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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