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 10월6일 브뤼셀. 사형 집행관이 영국인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ㆍ42세)의 목을 졸랐다. 죽어가면서도 신에게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외쳤던 그의 시신은 바로 불태워졌다. 어떤 죄를 지었기에 잔혹한 죽임을 당했을까. 성서 번역 탓이다. 라틴어 성서를 영어로 번역했다는 점이 그를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 성직자와 귀족들은 하층민들이 성경을 읽고 종교를 토론한다는 데 분노하며 그를 이단으로 내몰았다. 몰락한 귀족가에서 1494년 태어나 고전학과 신학을 공부한 틴들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의할 만큼 명망을 얻은 학자. 불어와 독일어ㆍ이탈리아어ㆍ그리스어ㆍ라틴어ㆍ히브리어에도 능통했던 그는 부유한 지주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했으나 바로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반(反) 성서적인 교회의 작태를 비판하고 신의 뜻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성서를 영역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에서 쫓겨나 유럽을 떠돌며 번역에 매달렸다. 최초의 활자 영역본이 나온 것이 1525년. 영국의 기근을 구휼한 곡물선에 6,000여부가 밀수된 신약본은 철저하게 수거됐으나 영국사와 근대 영어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유명학자 54명을 동원해 1611년 완역, 영어판 성서의 기본으로 꼽히는 흠정역 성서 중 구약의 83.7%, 신약의 75.7%가 틴들역과 동일하다. 틴들이 영어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틴들을 속박했던 압제는 옛날 얘기일 뿐일까. 문맹과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했던 중세 교회와 권력층의 행태는 표현의 자유 억압, 인터넷 규제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진실은 시간이 갈수록 높은 가치를 지닌다. 틴들판 초본은 오늘날 100만파운드를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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