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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금융 계열사 간 펀드ㆍ퇴직연금 등 '몰아주기' 문제에 칼을 빼 들었다.
수차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시장 스스로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도 보냈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작정하고 메스를 대기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시장에 자정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만큼 강제성을 띤 강력한 규제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5일 간부회의에서 "펀드 판매, 위탁매매 주문, 변액보험과 퇴직연금 운용 위탁, 회사채ㆍ기업어음(CP) 인수와 판매, 펀드ㆍ신탁재산 운용 등 계열사 간 몰아주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곳의 현황을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이와 함께 계열사 간 거래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규제, 시장구조의 개편 필요성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책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금융 계열사 몰아주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을 주문한 것이다.
◇도 넘은 금융 계열사 몰아주기 행태=김 위원장이 이처럼 강력한 대응책 마련을 지시한 것은 계열사 몰아주기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시장의 자율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규제체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금융 계열사 몰아주기 행태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실제 현재 변액보험과 퇴직연금 운용 관련 계열사 거래 비중은 각각 50%, 40%에 달한다. 또 펀드판매 상위 10개 회사는 계열사 상품을 55% 넘게 판매할 정도로 몰아주기 현상은 심각하다.
생명보험협회 상품비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계열 운용사를 둔 17개 생보사들의 계열사 평균 위탁 비중은 51%에 달한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대한 위탁 비중이 97.4%에 달했고 교보생명은 자산의 44%가량을 교보악사자산운용에 맡겼다.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위 10대 기업집단이 올해 1~5월 금융 계열사에 맡긴 퇴직연금 규모는 7,873억원에 달했다. 롯데그룹은 롯데손해보험에 95%를, 현대자동차는 HMC투자증권에 91%를 맡겼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90% 이상을 한 회사에 맡겨 운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계열사 몰아주기로 밖에 해석할 수 없으며 시장 자체 정화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ㆍ부실위험 개선에 초점=금융당국이 금융 계열사 몰아주기를 손 보기로 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부실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금융사들은 그동안 지주회사 등을 통해 계열화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간 거래는 시너지 효과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금융당국도 그런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너무 과하다는 데 있다.
변액보험이나 퇴직연금 등을 가입할 때 계열 금융회사가 있는 기업의 직원들은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왜 증권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겠느냐"며 "수만명에 달하는 임직원 고객을 확보해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산운용을 맡기는 곳이 한곳에 집중될 경우 부실위험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특히 계열 내 금융회사와 일반회사가 있을 경우 경기변동에 따라 실물 부문의 부실이 금융회사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또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한 회사에만 맡길 경우 투자실패가 발생했을 때 이를 만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여러 회사로 나눠 자산운용을 맡기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비계열 금융회사들과의 공정한 경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권익도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규제대책 나올 듯=금융당국은 이번에 은행에서 특정 보험사 상품판매 비중을 최대 25%로 제한한 '방카슈랑스 25%룰' 정도의 강제력을 갖는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나 부분적으로 도입된 규제로는 시장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실제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기준이 너무 낮아 대기업들의 퇴직연금 몰아주기에 전혀 과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 금융감독원을 통해 펀드ㆍ퇴직연금ㆍ회사채 등의 판매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국내외 규제사례를 총망라해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해 집중현상이 완화되는 분야는 제외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문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규제책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융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퇴직연금 같은 경우는 세제지원이 포함되는 만큼 방카슈랑스처럼 판매 비중을 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며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미 계열사 펀드판매 몰아주기 관행 등에 대한 법적 논쟁까지 끝나 있기 때문에 해외사례도 많이 참고해 대응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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