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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13일] 쉴리


채무 3억리브르에 연간 실질 재정수입 700만리브르. 쉴리 공작(1553. 12.13~1641)이 재정총감에 임명된 1696년 프랑스의 상황이다. 수입은 이자를 갚기에도 벅찼고 국민들은 굶주렸다. 11년 후인 1607년, 프랑스는 모든 빚을 갚았다. 대규모 토목공사와 군비증강에도 해마다 1,000만프랑 이상의 현금이 국고에 쌓였다. 국민들의 삶도 펴져 일요일마다 닭고기와 야채에 포도주를 넣은 조림 요리인 ‘코코뱅’을 즐기는 음식문화가 생겨났다. 쉴리의 마술은 조세제도 개혁과 적극적인 농업ㆍ산업장려책의 결과다. 우선 농민들에 대한 세금을 내리고 금리도 인하해 직물산업ㆍ유리공업을 키웠다. 대신 귀족과 영주들이 국가에 군대를 제공하는 대가로 세금을 면제 받는 제도를 축소해 부유층에게 거둬들이는 세금을 크게 늘렸다. 반발하던 귀족들은 얼마 안 지나 세금을 오히려 더 냈다. 관직매매를 늘리고 관직 보유자에게 일정액을 세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관직매매제도는 훗날 프랑스의 병폐로 굳어졌지만 신구교도 간의 오랜 내전을 겪은 프랑스로서는 이만큼 빠르게 재정 건전화에 도움을 준 제도도 없었다. 쉴리는 새벽4시부터 밤9시까지 일하며 무수히 많은 유산을 프랑스에 남겼다. 근대적인 도로망 정비와 운하 개보수, 퀘벡 식민지 건설이 그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임업ㆍ관광자원인 삼림을 계획적으로 가꾼 것도 그가 처음이다. 연인들의 장소라는 ‘퐁뇌프’도 세웠다. 군인 출신이었던 쉴리는 ‘재무장관이 포병대를 맡아야 대포가 반짝거린다’며 재정총감이면서도 군의 핵심 전력인 포병대를 직접 지휘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앙리 4세의 암살 직후 공직에서 물러난 뒤 저술한 ‘왕실 재정’에서 쉴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경작과 목축(노동)이 금광이나 보물보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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