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독일을 방문했을 때 현지 공정거래위원회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 통일 후 경제부처들이 베를린으로 이전할 때, 공정위는 베를린과 먼 본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정위는 경제부처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 할 준사법기관이기 때문에 경제부처와 같은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자주 마주치다 보면 친숙해질 것이고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유난하다 싶을 독일 공정위의 사례는 세종시에 다른 경제부처와 함께 이전한 우리 공정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위가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역할 변화와 위상 강화가 시급하다. 우선 독립성과 권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위원들의 상근직 비율을 올리고 국회에 임명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현재 3년의 임기도 5년 정도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은 모두 5년의 임기를 보장한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공정위 구성을 바꿀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공정위의 독립성과 함께 권한 강화도 필수적이다. 독과점이 우려되는 기업에 대해 공정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30년 전 미국에서는 AT&T라는 통신업체가 미국 전역에 독점적 위치를 누리고 있었다. 독점에 길들여진 AT&T는 치열한 혁신 의지가 부족했고 고객의 불만도 높아졌다. 미 공정위는 AT&T를 지역별로 여러 개의 회사로 강제 분할시켰고 이 조치로 인해 미국 통신 시장은 공정경쟁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통신 강국, 인터넷 강국인 미국을 만드는 데 공정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공정위의 투명성 강화이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 공정위의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전체 회의록을 공개해서 누가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떤 원칙하에서 해당 결정에 이르렀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불투명한 의사결정에 따른 오해도 줄이고 유사한 사례의 다른 기업들에 올바른 지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공정한 산업구조를 만드는 데 공정위의 큰 역할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실력만으로 공정하고 치열하게 경쟁해 중소기업도 대기업이 될 수 있는 산업구조와 시장환경을 만드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장기침체에 빠지지 않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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