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수개월째 정정불안에 시달려온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원조 의사를 밝혔다. 유럽과 러시아의 갈림길에 선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먼저 당근을 꺼내 들었던 러시아에 맞서 서방이 경제지원의 맞불을 놓음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정책 수석대표는 지난주 말 독일 뮌헨에서 열린 미·EU 간 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단기원조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지원방법 등 세부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제위기 등을 고려할 때 지원 규모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애슈턴 대표는 덧붙였다.
앞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시까지 진행 중이던 EU와의 협력협정을 전격 중단한 뒤 '친러시아' 정책회귀를 선택했고 이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져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8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다쳤다.
EU·러시아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선 우크라이나에 경제유인 카드를 먼저 제시한 것은 러시아였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50억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 및 천연가스 공급가 인하 등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정정불안이 가속화하자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수준인 CCC+로 강등했다.
서방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지원을 결정하면서 든 표면적 이유는 이 같은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경제·정치개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달 말 반(反)정부 야권과의 화해 조치로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 해임 및 내각 총사퇴가 이뤄지면서 앞으로 꾸려질 임시정부가 내년 대선 전까지 우크라이나를 이끌게 되는데 이들이 정치·경제개혁을 올바로 추진할 수 있도록 대규모 단기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역시 "우크라이나가 진정한 개혁과 변화를 추진한다는 조건하에 원조가 이뤄질 것"임을 확실히 했다고 익명의 미 당국자는 전했다. 다만 이번 지원이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정체결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애슈턴 대표는 설명했다.
이 같은 배경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우크라이나를 친EU로 복귀시키기 위해 러시아와의 힘겨루기를 불사하겠다는 서방권의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특히 친러 성향이었던 아자로프 총리를 해임한 데 대한 경고로 러시아가 대(對)우크라이나 원조를 잠정 중단한 뒤 며칠 만에 서방권의 경제지원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립각이 더욱 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번 원조는 폭력사태 및 국가 디폴트를 막는 한편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의 경제·정치적 컨트롤 능력을 둔화시킬 수 있는 '당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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