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아시아 증시가 이른바 'R'의 공포(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에 시달리며 급락한 가운데 유독 말레이시아 증시가 국제투자자본의 도피처로 각광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증시는 다른 신흥시장과는 달리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 않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국제 자본시장으로부터 차단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은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이 최근 7주연속 순자본이 유입되면서 다른 아시아 시장에서 타격을 받은 국제 투자자본들의 새로운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가 흐름을 보이면서 과도한 변동성으로 흔들리고 있는 다른 아시아 시장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미국 보스턴의 주식펀드평가사인 EPER 글로벌에 따르면 이달초 1주일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말레이시아 시장만이 2,840만달러의 순자본유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신흥시장은 모두 16억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말레이시아 증시의 대표격인 콸라룸푸르종합지수는 올들어 지난해 최고치였던 1447.04에 비해 겨우 0.01% 하락했을 뿐이다. 반면 싱가포르, 한국, 홍콩, 상하이 등 아시아 주요 신흥시장 주가는 지난해 최고치에 비해 대부분 20%이상 폭락했다.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이 이처럼 아시아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경제를 이끄는 주요 제조업체들이 아직 증시에 상장되지 않아 글로벌 시장의 충격을 피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전자산업의 경우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회사인 미국 인텔마저도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직 주식을 상장하지 않고 있다. 둘째,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으로 말레이시아가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야자유와 광물자원을 수출하는 IOI나 IJM플란테이션 등의 기업들은 최근의 가격 상승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셋째, 금융 및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아직 높지 않아 해외로부터의 충격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 은행들의 경우 해외 자본투자가 금지되며, 마찬가지로 이번 미국 경기침체를 불러 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증권등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정부의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 인하, 기업 설비투자를 위한 금융지원 확대책 등도 말레이시아 증시의 또 다른 안정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WSJ은 말레이시아 증시도 미국 등 세계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결코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때 자본시장 개방과 기업개혁이 보류된 데 대해 국제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말레이시아 증시에 대한 낙관론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투자은행의 한 전문가는 "말레이시아는 올해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발 경기침체의 영향에서 비켜나 6%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링깃화가 달러에 페그돼 있는 등 엄격한 자본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다른 아시아 시장과는 달리 상대적인 투자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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