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최근 혼란, 권력의 공백 상태를 노리는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의 등장은 많은 관찰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 백악관은 이곳을 반테러 캠페인의 모델로 치켜세운 바 있다. 그러나 예멘의 궤적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지금껏 아랍 세계가 보여준 유사한 패턴을 그대로 좇고 있기 때문이다.
예멘 혼란, 美 동맹과 연관 깊어
예멘은 세속 성향의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에게 33년간 통치를 받아왔다. 그는 종교·종파주의 세력(예컨대 시아파인 후티)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억압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더해졌고 그만큼 반발도 커졌다. 그의 체제는 정치·군사적 반대에 직면했고 결국 아랍의 봄을 계기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예멘과 워싱턴의 사람들 모두 좀 더 대표성을 띤 정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살레 정권 당시 부통령을 지낸 압드라보 만수리 하디라는 편안한 선택을 했다. 그는 '정치적 포용 약속'을 어기고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억압 통치를 했다. 또다시 저항과 반란이 움텄다. 힘의 정치가 종교·종파 대결 이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이것을 보라. 살레는 시아파였지만 (같은 시아파인) 후티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현재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후티와 동맹 관계를 구축한 상태다.
이것이 바로 아랍 세계에서 테러를 생산하는 패턴이다. 서구권의 지원을 받은 세속주의 체제는 불법 체제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억압적으로 되고 이에 맞서 반대 진영도 더욱 극단적·폭력적으로 바뀐다. 타협과 다원주의·민주주의를 위한 공간은 사라진다. 반란 세력과 지하디스트들의 불만은 대개 국지적 수준이었지만 워싱턴이 독재자를 지원하자 그들의 목표는 반미로 확산된다.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는 우리는 이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더 억압적인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아얀 히르시 알리 같은 지식인도 온건 성향의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시시를 지지했다. 공화당의 루이 고머트는 시시를 조지 워싱턴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랍의 군 출신 독재자가 온건 이슬람을 지향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현대 이집트의 첫 군부 출신 지도자인 가말 압델 나세르는 무슬림형제단의 후진적·반계몽적 관점에 지속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왔고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사다트는 오히려 단속을 더 강화했다. 지난 1970년대 이집트의 감옥 안, 이 같은 억압된 분위기에서 알카에다가 태어났다.
아랍 독재자를 대상으로 하는 눈먼 지원의 위험성을 이해했던 한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중동에서 결핍된 자유를 용인하고 용서한 서구권의 지난 60년 세월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의 국무장관은 더욱 분명하게 말했다. "이 지역에는 정치적 표현을 위한 합법적 채널이 사실상 없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활동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드라사(이슬람 종교 학교)와 모스크 안에서 이것이 일어난다. 가장 잘 조직된 정치 세력이 급진주의 단체인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두운 그늘, 그 아래에서 알카에다는 희생양으로 삼을 만한 불안한 영혼을 찾았고 '먼 거리의 적'에 대항할 천 년 전쟁의 보병을 발굴했다."
아랍 독재자에 눈먼 지원 반복 말아야
이들은 바로 조지 W 부시와 콘돌리자 라이스다. 부시 행정부가 엉망인 해결책-체제 교체, 이라크 점령-을 썼다고 해서 이들의 진단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아랍 세계는 독재자와 편협한 민주주의자들 사이에 사로잡혀 쉽게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이 독재자를 향해 눈먼 지원을 하는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예멘·이집트 독재자들과 더욱 가까운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절대 군주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행동에 참여하면 이 나라의 어두운 그늘, 모스크, 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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