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에 거품이 빠지면서 실적만큼 보수를 받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팀 쿡 애플 CEO가 지난해 3억7,800만달러(약 4,400억원)를 벌어들이며 CEO 보수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글로벌경영컨설팅회사인 헤이그룹과 매출액 기준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CEO 보수조사'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연봉과 성과 간 상관관계 높아져=WSJ에 따르면 지난해 CEO 보수는 지난 2009~2011년의 주가와 배당금 등 주주 수익이 1% 늘어날 때마다 0.6% 증가했다. 반대로 주주 수익이 1% 줄어들면 CEO 보수는 0.6% 감소했다. 2010년에는 주주 수익이 1% 감소했음에도 CEO 보수가 0.02% 이상 늘어났다. 이에 대해 WSJ는 "CEO 보수와 실적 및 주가 등 성과의 상관관계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에 따라 최고경영진의 보수에 대한 주주 입장을 묻는 투표를 시행하는 '세이온페이(say on pay)' 규정이 도입되면서 실적을 근거로 CEO 보수를 결정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온페이 규정에 따른 투표 결과는 구속력은 없지만 주주들의 눈치를 보는 기업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CEO는 쿡으로 그의 연봉과 인센티브는 각각 9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3억7,600만달러에 달하는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덕분에 돈방석에 앉았다. 그의 수입은 2위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7,600만달러)보다 5배나 많았다. 3위는 레슬리 문베스 CBS방송 사장(6,900만달러)였고 소매업체 JC페니의 로널드 존슨(5,300만달러)이 4위에 올랐다.
◇실적과 무관하게 받은 CEO들도 다수=하지만 여전히 실적과 무관하게 보수를 받는 CEO들도 많았다. CEO의 보수가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유능한 인재영입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씨티그룹의 비크람 판디트 CEO의 경우 지난해 주주수익률이 -44%를 기록했지만 4,300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이는 300대 CEO 평균 수입 1,030만달러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정유업체 헤스의 존 헤스 회장도 지난해 주주수익률은 -25%였지만 1,330만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반면 실적이 좋았는데도 쥐꼬리 봉급을 받은 CEO들도 있다. 소매업체 패밀리달러의 하워드 레빈 CEO는 지난해 주주수익률이 26%를 기록했지만 보수는 460만달러에 불과했다. 정유업체 웨스턴리파이닝의 제프 스티븐스 CEO 역시 지난해 주주들에게 26%의 수익을 안겨줬지만 본인은 240만달러 보수를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전용기ㆍ경호 서비스 등 각종 혜택도 여전=한편 CEO 보수를 꼼꼼히 따지는 주주들이 늘면서 기업들은 급여 외의 각종 특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임금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CEO가 개인적으로 회사 전용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기업은 68%로 전년과 동일했다. 전용기를 가장 애용한 CEO는 시어즈홀딩스의 루이스 담브로시오로 필라델피아 집에서 시카고 근처의 시어즈 본사까지 약 1,200㎞를 통근하면서 연간 79만달러를 썼다. 이는 서울에서 일본 끝에 달하는 거리다. 지난해 말 물러난 새뮤얼 팔미사노 IBM CEO와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도 전용기 이용 비용으로 각각 48만달러가량를 지출했다.
CEO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30%에 달했다. 부동산개발 업체 라스베이거스샌즈의 경우 셸던 에이델슨 CEO의 경호를 위해 260만달러를 썼다.
기업들은 골프장 회원권 등의 특전은 줄였지만 CEO 배우자에 대한 교통비 지원 및 운전기사 제공 등의 혜택은 늘렸다. CBS방송은 문베스 CEO가 집에서 TV 쇼와 영화 등을 모니터할 수 있도록 전용 업무실을 짓는 데 50만달러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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