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학가에 대자보 열풍이 불고 있다. 국립 대만대를 비롯해 정치대·칭화대 등 주요 대학엔 '니하이하오마(당신은 아직 안녕하십니까)'라는 표제의 수많은 벽보가 나붙어 있다.
'니하이하오마'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휩쓴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의 대만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불길은 대만과 중국의 서비스 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대학생 단체가 입법원(국회)을 점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급속하게 확산됐다.
대만 청년들의 분노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안녕들 하십니까'를 떠올리게 한다.
우선 대학생들의 정치적 행동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해 고려대에 내걸린 '안녕들 하십니까'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향해 '정치적 문제를 잊고도 문제 없냐'라고 던진 질문이었던 것처럼 대만에서의 '아직 안녕하냐'는 물음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층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분노의 이유도 닮았다. 대만이나 우리나 20대 청년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암울하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의 '88만원세대'처럼 대만 역시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더라도 '22K'(2만2,000대만달러·약 77만5,000원)로 표현되듯 낮은 평균 초임을 감내해야 하는 게 대만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국가 지도자의 소통 부재가 분노를 키웠다는 것도 우리와 대만이 다르지 않다. 우리 젊은이들이 "박근혜 대통령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을 통해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 불만을 표시했다면 대만 청년들은 "마잉주(馬英九) 총통, 니하이하오마"라는 말로 분노를 표출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로 가득찬 사회에 건강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대만이나 우리나 속히 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 출구 찾기가 요원해 보인다. 대학생 시위가 갈수록 거세져 지난주 말 타이베이에서는 5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마잉주 총통 하야하라' '민주주의를 팔아먹지 말라' 등의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정권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정도로 대만 청년들의 분노는 거세다.
우린 어떤가. 박 대통령에 대한 청년층 지지율이 일부 반등하고 대자보도 뜸해졌다.
그러나 '안녕들 하십니까'를 유발했던 청년 일자리 사정은 달라진 바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고용률이 39.7%로 전년보다 0.7%포인트 줄어 사상 최저치고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첫 일자리를 얻은 청년이 82만9,000명으로 2008년에 비해 50만5,000명(64.2%)이나 늘었을 정도로 안정성이 나빠졌다. 더 큰 문제는 고용 상태에 있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실질적인 취업 포기자, 일명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에 대한 희망 자체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모바일 설문조사 전문기관 두잇서베이의 조사에 따르면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겠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57%였는데 이 가운데 20대가 60.2%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희망 충전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또한 한국이 가장 암울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정치'(53.8%)가 1위를 차지했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냐는 물음엔 70.5%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역시 해법은 일자리다. 일할 권리는 헌법(32조 1항)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젊은이에게 암울함만 안겨주는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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