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하강할 위험이 커지면서 그동안 기업들의 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봐왔다는 점을 깨달은 시장이 급격하게 조정국면에 진입한 것입니다." 월가의 비관론자로 유명한 스티븐 로치(사진) 모건스탠리 아시아 비상임회장 겸 예일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더블딥(경기가 회복세를 타다 다시 침체되는 현상)에 빠질 확률은 50대50이라며 패닉상태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전세계 투자자들이 대혼란에 빠진 4일 로치 회장과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유럽 각국은 재정위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로 확산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야 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복세가 큰 폭으로 둔화되고 있는 미국경제에 대해서는 지난 2008년 1ㆍ4분기 이후 14분기 평균 소비증가율이 0.2%(연율 환산)에 그치고 있다며 이 같은 소비부진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 양적완화(QE3)를 실시하더라도 유동성 함정에 빠진 현재의 미국경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유동성이 넘쳐나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추가적인 불안을 안겨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식시장은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선진국들에서 경기침체(recessionㆍ리세션)가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더블딥을 걱정하는 것이죠. 위기 이후의 경제회복 과정에서는 항상 더블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약한 경기회복세로는 사이클상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쇼크에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쇼크에 대한) 완충력은 떨어지고 체력은 빈혈환자처럼 약하다는 점에서 버블 뒤의 회복기는 무척이나 취약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올 상반기에 글로벌 경제는 유럽의 재정위기,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정불안 및 이에 따른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등 너무 많은 쇼크를 받았습니다. 여기에다 미국의 주택시장 침체 역시 하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가 하강할 위험이 커지자 주식시장에서는 기업들의 실적을 너무 낙관적으로 봐왔다는 점을 인식하고 급작스럽게 조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글로벌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러한 요소들을 감안하면 선진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확률은 50대50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선진국의 리세션은 한국이나 중국 등 수출주도형 국가들에도 큰 위협요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씩 짚어보죠. 우선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입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의 채무위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 등으로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보다 거대한 경제권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현재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은 독일에 비해 400bp 이상 높은데 이는 그리스 등이 구제금융을 받았던 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죠. -유로존이 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규모가 750억달러에 불과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문제를 다루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유럽은 당장 스페인과 이탈리아 재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재정위기 방어여력을 높여야 합니다. 특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가 문제된다면 IMF와 ECB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될 것입니다.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어떤 상태입니까. ▦매우 걱정되는 수준입니다. 단일통화 체제는 처음부터 정치적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합니다. 이후 완전한 통합을 위한 정치적 노력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사이에 경제적 결함들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유로존이 현재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경제에 대해 소비문제를 지적하신 적이 있는데요. ▦미국경제 역시 썩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2년 만에 두 번째로 성장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8년 1ㆍ4분기 이후 14분기 동안 개인소비는 단지 연율로 환산해 0.2%만 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런 상황은 처음입니다. 알다시피 미국경제는 70%를 소비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의 일본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를 '좀비(zombie)'라고 표현했습니다. 좀비화된 소비자는 미국경제를 '죽은 상태(walking dead)'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 소비자들의 이 같은 태도가 앞으로 몇 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은 130%에서 115%로 떨어졌습니다만,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30년간 평균이었던 75%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저축률은 같은 기간 1%에서 5%로 올라갔지만 이 역시 평균이었던 8%에 비해 낮습니다. 여기에다 2,500만명의 미국인들이 실업이나 불안전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고 7,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한다는 점 또한 소비여력을 제한하는 요인입니다. -미국정부의 대응방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정부는 수출과 재정지출 확대에 더 노력해야 합니다. 낡고 오래된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에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그리고 수출전략에 있어서는 중국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3대 수출시장일 뿐 아니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 수출을 두 배 늘리겠다고 했는데 대중국 수출이 늘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미국 상품이 팽창하고 있는 중국의 내수에서 의미 있는 수준을 차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무역 문제를 다룰 때 환율보다는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미 정치권의 채무상한 협상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출이 제약을 받게 되면서 추가적인 양적완화(QE3)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먼저 양적완화는 효용을 다한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차 양적완화(QE1)는 경제의 자유낙하를 막고 위기를 제어했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었습니다. 고전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회복세를 유지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버블을 겪은 후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부채를 상환해 밸런스 시트(balance sheet)를 맞추려는 노력이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FRB는 소비자들이 소비를 늘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미국 자산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점에서 2차 양적완화(QE2)의 실패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어요. 자산시장은 벌써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득이 늘었지만 소비자들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FRB는 정책이 유도한 자산효과(wealth effects)에 근거해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공격적으로 소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통화당국자들보다 훨씬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QE3를 실시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인가요. ▦QE2는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즉 일자리 문제 해결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QE3가 실시된다면 실패할 것이 분명하고 오히려 가뜩이나 불안해지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에 유동성만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미국은 지금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계는 FRB와 같은 주요 중앙은행들의 절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어떻습니까. 부동산 버블에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중국경제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괜찮습니다. 버블이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고 지방정부의 채무가 과도하게 불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부동산 버블은 우선 주로 중국의 동해안에 위치한 일부 도시 지역의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또 과다공급 문제를 지적하는데 이는 한쪽만 보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앞으로 20년간 3억1,000만명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중국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농산물에 대한 공급애로 해소 ▦위안화의 점진적 평가절상 ▦지준율 인상 ▦긴축적인 통화정책 등 네 가지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인민은행은 2010년 10월 이후 금리를 다섯 차례 인상해 6.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러한 수단들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요. 또 하나 지방정부의 과다한 부채문제를 지적하는데 중국정부도 이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지방정부의 빚은 전체 국내 대출의 30%에 해당하는 10조7,000억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중국정부는 추정합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부채규모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데 저의 견해는 좀 다릅니다. 이러한 부채의 상당 부분은 2008~2009년 경기부양을 위해 지방정부가 투자를 늘리면서 발생된 것입니다. 또 대부분의 사업들이 과거부터 있던 숙원사업들이었지 급조된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건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국은 자체적으로 위협요인들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또 12차 5개년 계획에서 소비지향적 성장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계획이 효과를 발휘하면 서비스 분야와 도시의 고임금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오는 2015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비스업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7%에서 43%로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성장률은 10%에서 7%로 떨어지더라도 현 수준의 고용을 창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한국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는 외부수요 감소에 취약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외부수요에 의존하는 비율이 2007년 36%에서 올 1ㆍ4분기 50%까지 높아졌습니다.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아진 것도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중국도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많다는 점에서 선진국 경기가 후퇴한다면 한국 역시 우회적인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반면 중국의 내수소비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 고무적입니다. 전자제품부터 식음료까지 한국은 우수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수요를 다양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커지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수개월간 단기금리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