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집단휴진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쓴 끝에 건강보험수가 결정이나 원격진료 입법,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등 정부 주요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할 권리를 얻어냈다. 이번 의·정 협상에서 수가인상 여부가 공식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의사들이 건강보험 수가 결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의·정 협의 결과'를 살펴보면 정부는 의사들이 파업을 내걸며 외쳤던 요구사항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일단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한 뒤 4~9월 중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을 벌인 다음에 본격적인 입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의협이 '선(先) 시범사업 후(後) 입법' 주장을 관철한 것이다. 시범사업의 기획과 구성, 평가는 의협과 정부가 함께 맡는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여기서 나오는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수가 결정구조가 의사들에게 유리하게 바뀐 부분은 이번 의·정 협상에서 의협이 가져간 최대 성과물로 풀이된다. 의사들의 수입이 많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건보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가입자 8명, 공급자 8명 외에 공익위원으로 정부 측 4명과 정부 추천 전문가 4명이 참여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공익위원 몫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해
구성하기로 했다. 사실상 정부 의견을 대표해온 공익위원 자리에 의사들 추천 인사가 대거 들어오는 만큼 건정심 구조는 의사들에게 유리해진다. 또 의협과 건보공단의 수가 협상이 결렬되면 현재는 건정심이 바로 결정하지만 앞으로는 가입자와 공급자(의료계)가 참여하는 중립적 성격의 '조정소위원회'를 만들어 논의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치기로 했다.
지난 10일 의협 1차 집단휴진 때 전공의 4,800명이 동참하며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한 만큼 이번 협의안에는 전공의 대책도 새롭게 추가됐다. 정부는 지난해 마련된 전공의 수련환경 지침에 명시된 '최대 주당 88시간 수련(근무)'이 잘 시행되도록 병원들을 감독하고 궁극적으로 수련시간을 줄여가기로 했다. 수련시간이 줄면서 병원에 인력공백이 생기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보상방안도 올해 중 마련한다.
수련환경 개선 역시 정부의 예산이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므로 전체 국민으로 볼 때는 의료비용이 더 커지게 된다.
의협은 오는 20일까지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협의안 수용 찬반투표를 진행하며 참여자 수와 관계없이 찬성표가 절반을 넘으면 24일 예고된 2차 집단휴진 방침을 철회하게 된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의협의 모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있다고 판단한다"며 "집행부는 회원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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