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회복 따라 증산 재개 나서… 치킨게임 재연 가능성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이 일제히 설비 투자에 들어간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막대한 적자에 밀려 감산에 들어간 반도체 업계가 최근 수요회복 기조에 힘입어 증산 쪽으로 방향타를 전환하고 있는 것.
이에 앞서 삼성은 내년에 모두 5조5,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반도체 생산 1위를 다진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가격경쟁력에 눌려 크게 위축됐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마저 증산경쟁에 들어감에 따라 반도체 시장은 다시 한번 '치킨게임'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시바와 엘피다가 세계 1위 반도체 업체 삼성전자를 앞지르기 위해 나란히 투자 확충 계획을 내놓았다고 22일 보도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PC 운용체제(OS) '윈도7'과 반도체를 많이 사용하는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등 스마트폰 수요가 내년에도 크게 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MS가 올해 10월에 새로 발표한 윈도7은 PC의 주기억장치로 쓰이는 D램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을 2GB 이상 요구한다. 기존 '윈도비스타'(1GB)와 '윈도XP'(128MB)에 비해 메모리 반도체가 2∼10배 이상 많아야 PC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D램 시장회복으로 D램 가격은 올 초에 비해 300% 뛰었다. D램 업계 3위인 엘피다는 지난 2년간 적자에 허덕이며 일본 정부에서 공적자금 300억엔을 받았으나 D램 가격상승으로 올해 3분기(7~9월) 영업이익 8억엔(약 100억원)을 냈다.
낸드플래시 반도체도 내년 스마트폰 수요 확대와 맞물려 성장이 예상된다. 최근 애플이 아이폰의 저장 용량을 8~16GB에서 16~32GB로 늘리는 등 스마트폰의 저장 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노키아, 삼성전자, LG전자 등 세계 주요 휴대폰업체들이 스마트폰 비중을 올해 32%에서 내년 35%까지 올릴 예정이어서 낸드플래시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엘피다와 도시바는 세계 경제 불황으로 올 회계연도에 각각 1,473억엔과 1,000억엔 규모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엘피다는 중국 쑤저우의 신규 공장 설립을 중단했고, 도시바는 일본에 두 개의 생산라인 건설 계획을 연기했다.
하지만 올해 세계 경제 불황 속에서 삼성전자,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몇 개 반도체 회사를 제외하고 대다수 업체들이 파산하거나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다. 내년 시장 전망이 좋은데다 공급과잉 우려가 없어지면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재기를 위한 기반 마련에 나선 것.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생산업체인 도시바는 1,000억엔(약 1조3,000억원)을 투자해 내년 초 최신 설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의 낸드플래시 주요 생산업체인 샌디스크(SanDisk)와 합작 공장에도 500억엔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40%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엘피다는 히로시마에 있는 D램 생산 공장에 올 10월까지 4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2011년 3월말까지 600억엔으로 투자 계획을 늘렸다. 엘피다는 이번 투자를 통해 현재 80%를 차지하고 있는 65나노미터의 설비를 대폭 줄이고, 45나노미터 설비를 전체의 60%까지 늘릴 방침이다.
65나노미터에서 45나노미터로 설비로 교환하면 집적도가 두 배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생산량을 30%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증산 투자에 대해 한발 늦은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 반도체 시장의 짧은 경기 순환 주기를 감안하면 현시점의 투자가 결실을 맺을 시기에는 시장이 다시 하향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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