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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정부 위 정부'가 있다?

새영화 '모비딕'


정사(正史)가 있어야 야사(野史)가 흥미롭다. 사람들이 보편 타당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이 있어야 그에 대한 '음모'도 충격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음모가 차고 넘치는 시대, 대한민국에 '정부 위 정부'가 있다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다소 심심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 '모비딕'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시대 배경은 1990년. 발암교라는 다리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는 동료 기자 손진기(김상호), 후배 기자 성효관(김민희)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집단이 등장하고 이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자들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맞선다. 영화는 1990년에 실제 있었던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 이병은 민간인 사찰 자료가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탈영해 폭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모티브일뿐 영화는 폭탄테러, 간첩, 핵 이야기까지 범위를 넓힌다.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박인제 감독은 탄탄한 구성으로 작품을 힘 있게 끌고 나간다. 특히 추격 신에서 등장하는 교통사고 장면은 한국영화에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을 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탄탄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속에 담긴 이야기는 미적대다 끝난다. 음모론을 다뤘지만 과감하게 내지르지도 않았고 속 시원하게 파헤치지도 않았다. '컨스피러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음모론을 봐온 관객들에게는 영화가 밋밋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영화 제목을 가져와 거대한 고래에 맞선 선장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실체를 알기 어려운 거대한 고래를 더듬는 영화 속 이방우처럼 영화도 거대한 무언가를 데려다가 더듬기만 하고 끝내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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