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음식의 새로운 제조법을 실험하는데 1,000번을 실패한 적도 있지요. 100% 확신을 갖고 시작하는 연구개발은 없습니다. 실패도 연구의 결과입니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전통식품을 개발하는 한귀정(49·사진) 연구관은 그가 맡고 있는 가공이용과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지난 2010년 개발한 '굳지 않는 떡' 등 전통식품 관련 기술을 고안해 자신의 이름을 올려 등록·출원한 특허·상표등록권만 줄잡아 40건에 달한다.
한 연구관은 지난달 27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우리 음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식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고치고자 하는 욕심이 전통식품 개발에 몰두하도록 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굳지 않는 떡' 기술은 지금까지 300여개 업체에 이전됐으며 2011년 생산 이후 시장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보통 떡은 하루만 지나도 굳는 단점이 있다. 한 연구관은 기존 떡 제조방법을 그대로 이용하고 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오랫동안 말랑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떡살을 칠 때 낮은 온도에서 재료를 균질화하는 이른바 '저온 펀칭' 기술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실험결과를 얻으려면 쌀 수분·입자나 가공온도 등 변수만 10가지인데다 실험 경우의 수는 1만가지에 달했다.
"최종 가능성 있는 2,048가지 실험방법을 추려놓고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실험한 끝에 1,000여번 만에 성공했어요. 결국 수백 번의 실험 실패가 확신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굳지 않는 떡은 방부제를 넣지 않는 만큼 썩지 않게 냉장·냉동 상태만 유지한다면 이론상 말랑함과 쫄깃함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 컵 떡국, 떡 케이크, 라이스클레이(쌀찰흙) 등 다양한 응용식품으로도 개발이 쉽다. 따라서 기존 불가능했던 해외수출도 가능해진다. 농업과학원이 2012년 미국 CNN 인터넷판을 통해 굳지 않는 떡을 홍보하자 흥미 있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는 "서양인들 중에도 밀가루의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 소화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떡은 훌륭한 대체식품"이라며 "세계시장에서 우리 떡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가 개발한 김치소스도 기술이전 받은 식품회사를 통해 상품화를 앞두고 있다. 브랜드 이름은 'K소스'다. 김치를 가공해 토마토케첩처럼 기호에 따라 국수·빵·감자튀김 등에 넣거나 발라 먹을 수 있도록 개발했다. 이 같은 다양한 전통식품 개발로 시장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한 연구관은 최근 '발명의날'에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농업과학원에 들어와 연구원으로 일한 지 올해로 24년째인 그는 어릴 때부터 농업 분야 공무원을 꿈꿨다. 전북 지역 농촌지도소에서 공무원으로 평생을 봉직한 부친을 존경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동생도 완주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어 세 부녀가 대를 이은 농업 공무원 가족인 셈이다.
그는 "어릴 때 할머니 옆에서 떡과 한과를 배우면서 자연스레 전통음식 제조에 대한 감이 몸에 배었다"며 "농업이 좋아 연구기관에 들어온 뒤 훌륭한 우리 음식을 과학화·표준화해 보겠다는 열의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연구관은 여전히 욕심이 많다. 가장 난제인 시루떡도 굳지 않게 하고 떡들이 달라붙지 않게 하는 기술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끝없이 반복되는 실험이 뒤따르고 후배 연구원들의 열정도 필요하다. 그는 후배 연구원들에게 "생활하며 발견하는 문제점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우선 필요하다"며 "연구는 결국 불편하고 모자란 것을 개선하고 채우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 소비자들도 자연에 가까운 우리 음식과 식품에 더 많은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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