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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일등국민, 삼류정부

지난 65년 5월18일 새벽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순교장광장에서 수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32살의 유태인 청년의 교수형이 집행됐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스파이 엘리 코헨. 공개처형 장면은 이스라엘에도 중계됐고 유태인들은 비탄 속에 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코헨은 시리아 권력 핵심부에 침투해 골란고원의 병력 배치 현황, 이스라엘 공격계획 등의 기밀을 빼냈고 그 정보는 2년 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대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민보호 최선 다하는 이스라엘 12년 뒤 이스라엘의 작은 농촌마을에 메나헴 베긴 총리와 국방장관ㆍ참모총장 등 내각과 군의 최고지도자들이 대거 모였다.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의 성년식 축하를 위해서였다. 코헨이 죽을 때 겨우 돌이었던 아들도 거기에 있었다. 총리는 소년들에게 아버지의 영웅적 활동을 들려준 뒤 자신의 회고록을 선물하며 격려했다. 소년들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과 유족을 잊지 않고 챙겼고 국민들은 그런 조국에 헌신과 충성심으로 응답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단결력과 애국심이다. 유태인들에게 애국심은 태생적이겠지만 그 유전인자는 이처럼 국민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부로 인해 제대로 발휘되는 듯싶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린다. 지금 중동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도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레바논 사태는 미국의 중동전략 등 복잡한 요인이 있지만 도화선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였다. 이스라엘은 석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엄청난 화력을 동원해 베이루트의 이슬람 지역을 초토화하고 있다. 사망자와 난민이 속출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병사 석방과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외치고 있다. 어린이 등 무고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전쟁은 저주받을 행위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들의 국민 보호 신념과 자세는 새겨볼 만하다. 레바논 사태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부끄럽다. 4년 전 서해 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정부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얼마 전 열린 4주기 추모식에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참석하지 않았다. 전사자들은 잊혀졌고 유족들은 서글펐다. 결과는 총리의 국가유공자 가족 초청 간담회 참석 거부였다. 정부는 나라를 지키다 숨진 사람들을 소홀히 여겼고 국민은 그런 나라에 분노로 답한 것이다. 미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잠수함 정보를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넘겨주다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8년여의 감옥 생활을 한 로버트 김은 또 어떤가. 정부는 우리와 관련 없는 일이라며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혼자 자신을 지켜야 했고 그와 가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국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1등 국민에 3류 정부다. 한국정부는 국민앞에 떳떳한가 김영남씨도 메구미의 남편이 아니었더라면 가족 상봉이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그의 북한 납치 사실은 오래 전 남파 간첩에 의해 확인됐지만 정작 가족과의 만남은 일본이 메구미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이 진전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전까지 무관심했다. 납치가 아니라는 김씨의 말은 뻔한 거짓이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했으니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도 납북자와 국군 포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돼 석달 넘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원호 선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석방 노력에 무성의한 정부에 배신감을 토로했다. ‘조국을 도운 사람을 그 조국이 외면한다면 앞으로 조국이 원할 때 기꺼이 손 내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로버트 김 후원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 앞에 과연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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