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들어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진행돼온 M&A 규모가 1,400억달러(약 145조5,700억원)에 달한다고 조사기관 딜로직 자료를 인용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전체 M&A 총액의 13%를 차지하며 업종별로는 첨단기술·미디어·통신(TMT) 다음으로 컸다고 FT는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약업계 M&A가 초대형 독과점 기업 탄생이나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연구개발(R&D) 목적이 아니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요 제약업체들이 소규모 회사를 집어삼키던 지난 2000년대 초반의 M&A 관행과도 다르다며 "제약회사들이 다양한 회사를 인수해 제품군을 늘리는 다각화 전략 대신 주력사업에만 집중하는 전문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설명은 GSK-노바티스-일라이릴리가 추진한 3자 M&A 계약에서 잘 드러난다. 항암치료제 부문 세계 2위인 노바티스는 백신·동물치료제사업부를 넘기고 소비자건강사업부를 GSK와 합작하면서 글리벡 같은 항암제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반대로 백신·일반의약품이 총매출의 70%를 차지하는 GSK는 백신사업부를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 WSJ에 따르면 미국 화이자가 2012년 비핵심 분야인 유아식사업부를 매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군살 빼기는 최대 7년(미국 식품의약국 기준)에 이르는 신약 특허만료 기간이 끝나면서 닥쳐온 제너릭 업체들과의 경쟁 때문이다. 그동안 특허 덕분에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기업들이 특허만료를 전후로 앞다퉈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이다. 여기에 2000년대 초 이후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도 뜸해지며 기업들이 기존에 강점을 가진 분야에 더욱 주력하는 모양새라고 FT는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화 전략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영국계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일반의약품에 주력하는 전략을 고수해왔으나 판매가 지지부진한데다 기존 약의 특허만료까지 닥치면서 고전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또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백신·일반의약품·복제약 등 제품군 다양화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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