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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는 남미로 가지 말자

8년 전인 지난 99년 이맘때쯤, 취재차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ㆍ상파울루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해안과 강이 어우러진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그리스도상, 라틴계 미녀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코파카바나 해변, 넘어질 듯 흐느적거리는 탱고 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침 휴일이 겹쳐 있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있는 이과수폭포를 한번 가볼까 연구해봤다. 당시 돈으로 1인당 1,000달러를 더 줘야 한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손을 바르르 떨며 세계 최대 폭포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포기해야 했다. 요즘 한국전력 등 공기업 감사 20여명이 혁신 세미나를 빙자해 남미를 여행하려 했다고 해서 시끄럽다. 공기업 감사팀의 해외여행이 뉴스에 집중 조명되더니 대통령 직속 균형발전위와 서울시 일부 구청장들의 남미여행도 기삿거리가 되고 있다. 비난의 초점은 정치인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흥청거리며 호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정서상 먹혀드는 뉴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한발 물러서 몇 가지 생각해볼 일이 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진입해 글로벌 경제의 일원임을 자부하는 나라로서 지도층들이 해외를 둘러보며 선진제도를 배우는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사회지도층들이 무슨 연유로 남미로 몰려가는 것일까. 거리가 멀어 남의 시선을 피할 수 있고 가보기 어려운 곳이어서 그리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페론주의에 물들어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아르헨티나 국영기업에서 공기업 감사들이 배울 것이 무엇이며, 중앙정부의 부채를 갚지 않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브라질 자치정부에서 구청장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지 궁금하다. 문제는 사회지도층이 남미를 다녀오더라도 우리나라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8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발전 모델은 영미식이냐, 남미식이냐로 큰 획을 그었다. 82년 대서양의 조그마한 포클랜드섬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에 참해한 후 각국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승전에 힘입어 경제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했고 같은 시기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비해 패전한 아르헨티나는 수차례의 군부 쿠데타와 민정을 거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해외자금 이탈을 경험했다. 브라질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개혁은 독일과 일본의 추격을 따돌렸고 최근 들어 독일ㆍ프랑스가 뒤늦게나마 영미식 경제개혁을 도입, 성장 위주의 정책을 단행하고 있다. 브라질을 방문할 때 코파카바나 해변의 야시장에 보석 진열대를 차려놓은 70대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뉴욕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여기에 있는 노점상들은 사실상 실업자”라며 “뉴욕 월가는 브라질에 빌려준 빚을 받아내기 위해 실업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상파울루의 부자촌은 미국의 부자 타운보다 호화롭지만 산등성이 달동네는 한국의 60년대 판자촌을 연상하게 한다. 브라질이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했지만 구조개혁 없는 경제성장의 결과는 빈부격차의 심화였다. 필자가 남미를 다녀온 후 아르헨티나는 국가파산을 선언했고 브라질에서는 좌파정부가 들어섰다. 우리는 이런 것을 절대로 배워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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