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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이 착해졌다. '아는여자', '간첩리철진', '킬러들의 수다'등에서 특유의'장진식 유머'를 선보이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그가 몰라보게 대중적이고 착한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내 놓은 것이다. 진지한 장면에서 엉뚱한 말을 내뱉어 웃음을 자아내는 능력은 여전하지만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기묘한 상황과 타이밍이 주는 쌉싸래한 웃음의 맛은 덜하다. 스스로 "욕 먹을 구석을 요리조리 피해갔다"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장 감독을 15일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하얀 셔츠를 입고 등장한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전날 저녁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잠을 설쳤다고 했다.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냐는 질문에 차기작 준비에 빠쁘다고 말했다. 이미 완성한 영화를 잡고 있으면 이 시기(시사회에서 개봉까지)를 버티기 너무 어렵다는 것. '대통령'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영화는 정치적인 사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정치에서 쓰인 소재를 바탕으로 스크린에 옮긴 것이 아니냐?'고 던져 본 질문에 그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나 조사는 전혀 없었다"며 "이미 역대 대통령들이 온갖 드라마를 보여줘서 내가 쓰는 어떤 에피소드들도 그들이 이미 벌인 사건들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고 되받았다. 영화의 첫 에피소드는 대통령 이순재가 224억짜리 로또에 당첨돼 기부와 소유를 두고 갈등하는 내용이고, 장동건이 등장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북한ㆍ일본ㆍ미국간 외교문제가,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고두심은 여자 대통령이라는 그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장 감독은 세 에피소드에서 떠오르는 이명박 대통령의 300억 반환 약속과 박근혜 등 여성 정치인의 모습은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첫 번째 에피소드들은 전직 대통령들의 수천억의 비자금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만든 것이고, 여성 대통령의 롤 모델은 박근혜보다는 오히려 한명숙 전 국무총리나 강금실 전 장관에 가깝다"고 말했다. 오히려 롤 모델이 없을 것 같은 장동건은 홍정욱 의원이나 5년 전 오세훈 서울시장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될 만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지만 영화는 꽤 영리하게 정치적 쟁점을 요리조리 피해 착한 해피엔딩만 남긴다. 장 감독은 "내가 일부러 타협을 한건 아니지만 욕 먹을 구석을 잘 피한 것 같다"며 "과거에 내 행보는 정치적이고 호전적이었지만 이 영화는 싸움을 좀 그만하자는 뜻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80년대처럼 영화 안에서 (사회)운동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상업영화 한다고 투자 받아놓고 그 안에서 운동하면 그것도 치사한 일"이라며"정확한 의도를 나타내지 않는 작품의 태도에 철저하게 내 초기 작품을 좋아했던 팬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도 장진식의 재미는 모두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나기 전 장 감독은 장동건과 박해일에게 온 문자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두 배우들은 한국 영화 제작이 어려운 시기 이런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장 감독이 밝힌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제작비는 총 35억원. 그보다 더 많은 제작비가 든 것처럼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요즘엔 20억짜리도 50억짜리 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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