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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테러의 정치경제학
입력2005-07-11 17:56:14
수정
2005.07.11 17:56:14
권홍우 <정치부장>
영국 런던. 지하철역 화장실에 신사복 차림의 한 한국인이 들어섰다. 선반 위에 검은색 가방을 올리고 볼일을 보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화장실 입구로 나와 통화하던 중 갑자기 수색견을 동반한 경찰이 들이닥쳤다. 가방을 찾으려 되돌아선 화장실 입구에는 이미 경찰통제선이 그어진 상태. 가방의 주인임을 밝히자 수십정의 총구가 그를 향했다.
그가 전화했던 시간이래야 고작 4~5분. 그 사이에 ‘수상한 가방이 지하철역 구내 화장실에 있다’는 신고가 5건이나 들어갔다. 가방은 폭발물 처리반이 확인한 후에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영국에 유학 중이던 공무원이었던 그는 까다로운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야 풀려났다. 13년 전의 일이다.
테러… 서울과 런던의 차이
세월이 흐른 지금, 공무원으로 현직에서 활동 중인 그는 테러 용의자로 지목됐던 아찔한 순간보다 영국의 경보 시스템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의 회상에서 엿보듯이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테러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외치며 대영테러를 서슴지 않던 에이레공화국군(IRA)에 수십년간 시달린 탓이다.
영국의 대응 시스템과 이번 지하철역 테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서울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이라는 의문이다.
도시 밀도가 촘촘하고 지하철 이동인구가 어느 국가보다 많은 상황에서 테러가 일어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옴진리교 신자에 의한 사린독가스 살포 사건을 겪었던 일본 이상의 혼란이 예견된다.
두 번째는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런던의 테러대응 시스템을 갖고도 이번 테러로 인해 1,000여명의 인명이 죽거나 다쳤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재난방지 시스템이나 시민의식이 영국에 뒤지는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터졌다면 인명피해는 수십, 수백배에 달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만약 서울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이 실제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나라 중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 파병규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보복받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은 커지게 돼 있다. 테러의 정치경제학을 따져볼 때 그렇다. 가진 것이 없는 절박한 여건에서 테러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수단이다. 9ㆍ11 테러범들은 훈련비와 비행기 티켓 값이라는 비용으로 세계유일의 슈퍼파워 미국과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다른 미래를 고를 수 없는 처지라면 이념이나 슬로건, 정치적 분노에 보다 쉽게 빠질 수 있다.
이슬람권 최고 명문이라는 카이로대학교 졸업생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비율이 20%를 밑도는 상황에서 배우지 못하고 부유하지 못한 대중은 신을 위해 죽으면 후손까지 영화를 누린다는 성전(聖戰ㆍ지하드)를 택하게 마련이다.
이슬람권의 인구 증가율이 기독교 세계의 3~4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적 갈등구조가 경제적 불안과정을 거쳐 더 큰 정치적 갈등을 낳고 결국은 테러로 연결되는 구조다.
대응체제 정교히 가다듬어야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과격단체가 애써서 테러리스트를 양산하지 않더라도 테러는 확산일로다.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 혐의로 체포된 3명의 용의자가 모두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이슬람과 관계된 갈등이든 아니든 테러가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알카에다’는 이제 특정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돼가고 있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은 이슬람 세계의 신생아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3~4배의 숫자로 불어나고 자생적 테러집단이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판국에서 한국의 정치도 경제도 안전하지 않다. 테러대응체제를 가다듬는 한편으로 당장 실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라크 파병 철수를 공론화할 시점이다. 미국과 영국 내부에서조차 이라크 철수 논의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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