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최고의 상위법인 헌법. 그러나 어떤 권력자가 제 맘대로 헌법을 해석하고 손질 하며 헌법 자체를 한낱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2013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헌법은 아홉 차례 바뀌었다. 그 과정 속에 '헌법 파괴'의 시련도 몇 차례 있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을 두 번 고쳤다. 1952년 국회 간선제로 재선될 가망이 없자 계엄령을 펴 국회를 위협했고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켜 직선으로 정권을 연장했다. 그 후 4년이 지나서는 '사사오입'이라는 논리를 펴 부결됐다고 선포한 헌법개정안을 번안 통과시켰다. 대통령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3선 금지 조항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었다. 이승만은 그렇게 자신의 집권과 정권 연장의 도구로'헌법'이라는 장엄한 기본법에 생채기를 남겼다.
헌법이 겪어온 풍상을 소상히 전하기 위해 원로 언론인이자 국회의원 출신인 저자가 펜을 들었다. 헌법의 탄생 과정과 그 후 이 전(前) 대통령이 단행한 발췌개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 개정까지 대한민국 헌법의 모진 역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원로 언론인인 저자가 기자 시절과 11·15대 야당 국회의원을 하면서 만난 정치인들에게 직접 듣고 취재한 내용과 국회의사록을 토대로 썼다. 생생한 증언과 비화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 흡인력이 뛰어나다. 제헌헌법에서 '인민'이란 용어 대신 '국민'이란 말을 쓰게 된 배경, 대한민국이 아닌'태(太)한민국'이란 국호가 탄생할 뻔한 뒷이야기는 물론 친일 청산·교육 문제·경제민주화·영토 문제·노사관계 등 60년이 넘어도 여전히 뜨거운 우리 사회 화두의 뿌리도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은 크게 네 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헌법의 탄생'에서는 1948년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을 다룬다. 이어 1952년 5·26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을 통해 우리 헌법이 어떻게 유린 됐는지 '헌법의 수난사'를 촘촘히 그려낸다. 3장에서는 제헌국회 의사당과 제헌의원들의 생생한 2년의 풍경을 담았다. 마지막에는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수 차례 직접 방문하며 취재한 오늘날'헌법의 현장'을 담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두 얼굴의 헌법'은 저자가 헌법이라는 큰 줄기를 다루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응축한 듯 하다. 권력자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수백 수천 가지 법 가운데 최고로 높은 법'인 헌법을 마치 헌신짝처럼 다뤘다. 그야말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헌법은 역사 속에서 모진 수난을 겪은 것이다. 저자는"헌법 그 자체는 하나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가진 흉기가 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의 보호자,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헌법의 지나온 역사를 더듬으며 묵직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폐암을 극복하고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 책을 엮은 팔순의 저자가 헌법의 두 얼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2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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