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결혼 못하는 불효자는 웁니다 불황의 또 다른 그늘… 서은영 기자 supia927@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 "올해 3월로 예정했던 결혼을 일단 9월로 미뤘어요. 사실 9월도 확실하진 않아요. 주식 오르면 할수 있는데 안 오르면 또 미룰수밖에 없어요" 직장생활 6년차인 이 모(34) 씨는 동갑내기 남자친구 박 씨와의 결혼 약속을 벌써 2년째 미루고 있다. 이 씨와 박 씨의 자산이 주가 폭락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씨 커플의 불행은 2007년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혼집 장만을 위한 목돈을 모을 요량으로 이 씨가 먼저 단기 작전주 3개에 수 천 만원을 투자했다. 믿을만한 정보라는 얘기에 박 씨도 뒤따라 1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2007년 11월부터 주가가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8년 10월 한 종목은 상장폐지 결정이 났고 또 한 종목은 상장폐지나 다름없는 마이너스 9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여기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 씨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주식을 매입하는 이른바 '물타기'로 수 천 만원을 더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사람은 2억원이 넘는 거금을 날리고 남은 두 종목이 오르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씨는 "주가에 미래를 저당잡힌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자식이 결혼시기를 놓칠까 전전긍긍하시는 부모님께도 면목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취직이 늦어지면서 결혼을 전제로 교제중이던 남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경우도 있다. 2007년 8월 대학을 졸업한 강 모 씨는 거듭되는 불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지난해초 4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해왔다. 남자친구는 2007년 사법고시에 합격된후 강 씨가 계속 취업에 실패하자 결국 등을 돌린 것이다. 강 씨는 "남자친구 부모님이 내가 취업 준비생이라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는데 결국 이별까지 가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것 같다"며 "헤어진 후 몇 달동안 취업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마음 아파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8년 1~11월 혼인건수는 29만1,000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또 11월 한달간 혼인 건수는 2만7,000건으로 전년 동월보다 19.6%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펀드나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금융회사에서 대출받는 것도 힘들어지면서 결혼을 미루는 20, 30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물론 결혼이 줄어든 이유가 경제적인 어려움 한가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경제적인 문제가 결혼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결혼 적령기의 미혼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하는 현실, '취직 대신 취집'이라는 말도 옛말이 돼 버린 2009년 불황 속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이번주 리빙앤조이가 짚어봤다. 』 ● 취업난에 결혼 미루거나 포기… 금값 천정부지 '예물은 애물' 배우자 직업 비정규직 여부 확인…집장만 힘들어 처가살이도 'OK' 목돈이 없어서, 취직이 안돼서 결혼의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미 몇 년전부터 만혼 사례가 잇따랐다. 여기에다 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짝이 있어도 목돈이 부족해 결혼을 못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노총각, 노처녀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결혼 미루고 요즘 은행, 증권사 직원들 사이에선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하기 위해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원금을 크게 잃어 결혼을 미루거나 배우자를 찾는 것조차 포기하는 사례가 이제 흔한 얘기가 돼 버렸다. 은행원 김 모(32) 씨는 교제 중인 여성과 올해 4월 결혼하기로 약속했으나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퇴직연금에 넣은 것이 화근이 돼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처지에 놓였다. 김 씨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할 겸 운용실적에 따라 받을 돈이 바뀌는 확정기여형 상품에 가입했는데 대부분 펀드 매수를 하면서 원금의 60%가 일순간에 날아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갖고 있던 목돈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다가 목돈을 날린 사례는 금융권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펀드 열풍에 유행에 따라 투자했다가 환매나 매도 타이밍을 놓쳤거나 뒤늦게 막차를 타 목돈이 묶여버린 경우는 일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2007년 주식시장 호황이 끝나갈 무렵 남자친구와 함께 주식투자를 시작해 현재 2억원 가량의 돈을 날려버린 직장인 이 모 씨는 “당시만 해도 주식, 펀드를 하지 않으면 손해볼 것 같은 분위기 아니었냐”며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 중에 한순간의 투자 결정으로 결혼을 못하게 된 나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주변에도 많다”고 말했다. 대출받은 돈까지 물거품이 된 심각한 경우도 있다. 직장인 김 모(31) 씨는 “결혼 날짜를 수차례 미루다 이제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입을 열었다. 김 씨의 애인인 최 모(32) 씨는 지난해 여행사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자금난을 겪자 그간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목돈을 모두 빌려줬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경영 사정이 더욱 악화되면서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최 씨의 아버지가 사업 확장을 통해 타개책을 마련하겠다며 최 씨를 통해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으면서 최 씨는 더 이상 목돈을 마련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김 씨는 “부모님이 결혼 계획을 물어도 이런 사정을 알면 결혼을 반대하실 게 뻔해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며 “언제쯤 결혼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결혼비용은 줄이고 불황이 깊어지면서 예식을 치르더라도 혼수비용이나 신혼여행 비용도 절감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웨딩플래너 김보라 씨는 "요즘 결혼하는 부부들은 신혼 여행지를 가까운 동남아나 국내로 변경하거나 예물비용을 줄이고 사진촬영, 한복 구입은 생략한다”며 “적은 금액 차이에도 혼수를 줄이거나 컨설팅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몇 년전만 해도 유행처럼 늘어나던 호텔 결혼식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급호텔 예식장들은 1월 한 달동안 전년 동월 대비 20~30%, 많게는 50% 가량 결혼식건수가 감소했다. 1년 전에 예약해야 겨우 원하는 날짜를 선점할 수 있었던 예식장들은 예식 2개월 전에 전화해도 아무 때나 예약이 가능해졌다. 호텔이나 호화 예식장 대신 동문회관 예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 웨딩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일반 예식장 예식을 계획하고 있다가 동문회관 예식으로 변경하는 고객들이 늘었다”며 “이래저래 따지고 보면 동문회관이 일반 예식장에 비해 크게 저렴하지 않은데도 약간의 금액 차이에도 동문회관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답했다. 예물의 상징이었던 쌍가락지도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요즘은 거의 맞추지 않는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큐빅으로, 새로 보석 세트를 맞추는 대신 기존의 커플링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경우도 많아졌다.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통념도 불경기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대기업 연구원인 고 모(31) 씨는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연봉 삭감과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당분간 처가살이를 하기로 결심했다. 고 씨는 “주택 거품이 얼마나 더 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장만하느니 처가에서 잠시라도 신세를 지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취집’은 옛말 극심한 취업난에 취직 대신 취업을 택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 ‘취집(취업ㆍ시집, 취직 대신 결혼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극심한 불황 탓에 취집 역시 취업 만큼이나 문턱이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이상적 배우자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이 희망하는 이상적 배우자의 연 소득은 2006년 조사에 비해 약 563만원 증가한 3,655만원, 여성이 희망하는 이상적 배우자의 연소득은 역시 996만원 증가한 약 6,027만원이었다. 형남규 듀오 회원관리부 이사는 “배우자에 대한 연 소득 기대치가 남녀 모두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남성들 역시 직업이 있는 여성, 특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을 선호하는 현상이 눈에 띈다”고 밝혔다. 고소득 전문직 남성들조차 여성의 직업이나 연봉을 따지는 것이 당연해졌다. 올해 군의관 복무를 마친 최 모(30) 씨는 “지난해 결혼정보회사로부터 ‘26세의 휴학중인 여대생이 꼭 의사를 만나고 싶어한다’며 소개받을 의향이 있는지 묻는 전화를 받은 적 있다”며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소득도 없는 사람이 의사를 만날 생각을 하냐’고 일침을 놨다”고 말했다. 미혼 남성들이 배우자의 직업을 따지는 수준도 매우 구체적이다. 첫 만남 자리에서 정직원인지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인지를 바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정 모(25) 씨는 지난해 동료 남성 직장인 4명과 은행 여직원 4명의 미팅을 주선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미팅 자리에서 은행 여직원들이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남성 2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것. 정 씨는 “남성들도 배우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여부에 그렇게 민감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한편 안정적인 직장의 상징인 공무원과 공사 종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으로 뽑히면서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지난해 입사 동기와 결혼식을 올린 한국전력 직원 김 모(30) 씨는 최근 동료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통한다. 김 씨는 “공사 직원의 인기를 실감할수록 공사 직원들은 내부에서 배우자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공기업 내에서는 해마다 사내 커플이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심지어 공사측에서 사내 결혼을 장려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날 정도다. 실제로 한국전력 등 상당수 공기업들이 부서별로, 혹은 다른 지점끼리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에게 맞선을 주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관련기사 ◀◀◀ ▶ [리빙 앤 조이] 결혼 못하는 불효자는 웁니다 ▶ [리빙 앤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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