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8년 1월7일, 영국령 칼레가 프랑스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백년전쟁 초기인 1347년 점령해 영토로 편입한 지 211년 만에 칼레를 잃은 영국은 충격에 빠졌다. 칼레는 한줌밖에 안 되는 항구지만 마지막 대륙 영토였기 때문이다. 주력 수출품인 양모의 집산지로서 칼레에서 걷히는 관세가 왕실 재정수입의 35%를 차지했기에 경제적인 타격도 컸다. 영국은 왜 칼레를 상실했을까. 정실에 치우친 통치자와 자만 탓이다. 여왕 메리 1세는 9년 연하의 남편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명분도 준비도 없이 스페인ㆍ프랑스 전쟁에 참전해 화를 불렀다. 군대는 칼레의 요새 두 곳을 난공불락으로 믿고 프랑스군의 야습도 모른 채 신년관습에 따라 밤새 술을 마시다 거점을 잃었다. 프랑스를 얕보고 수비대의 구원요청을 묵살했던 메리 여왕은 칼레 함락 소식을 듣고 ‘내가 죽으면 심장에 칼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한탄한 뒤 10개월 뒤에 숨을 거뒀다. 영국인들은 광신도이자 폭군이던 메리의 죽음을 반겼지만 사기는 끝없이 가라앉았다. 국고는 바닥나고 프랑스ㆍ스코틀랜드 연합의 침입이 임박했다는 공포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완전한 섬나라로 전락한 영국은 해군력을 키웠다. 칼레의 무역상들은 해적 겸 모험자본가로 변신해 스페인의 보물선을 털고 세계의 뱃길을 열었다. 국가 존망이 간두에 선 상황에서 등장한 엘리자베스 1세는 종교적 화합과 외교술로 대영제국의 기반을 다졌다. ‘영국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던 칼레의 상실이 새로운 번영의 밑거름으로 작용한 셈이다. 영국에서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평가는 천지차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지만 아집과 편견에 빠진 지도자는 그 존재 자체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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