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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자본시장법을 고쳐야 하는 이유


"앞으로는 외국의 증권사들이 국내 투자은행 시장을 휩쓸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난 2006년 2월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현 금융위원회 위원장)는 자본시장법 제정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내 금융산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주식시장은 한국의 미래 성장산업인 금융산업의 토대"라며 "자본시장법이 제정될 경우 한국의 주식시장은 뉴욕이나 런던, 홍콩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국내 자본시장은 과연 정부가 장담했던 대로 됐을까. 국내 자본시장의 성적표를 한번 보자.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해외채권 발행주선은 BoA메릴린치와 HSBCㆍBNP파리바ㆍ다이와증권ㆍ바클레이즈캐피털 등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유상증자를 비롯한 주식 모집 부문도 씨티그룹과 크레디트스위스가 1, 2위를 차지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을 머쓱하게 했다.

사실 국내 증권사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결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IB들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국내외 IB격차는 엄청나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5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3조3,234억원으로 골드만삭스(78조6,848억원)의 4%에 불과하다.

안방서도 외국계 증권사 독주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초라한 현실은 글로벌 무대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조업체들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72조원에 이른다. 원ㆍ달러 환율 1,118원을 적용하면 달러로는 1,538억달러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 5위다. 삼성전자의 시총 규모는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1,344억달러)을 제친 지 오래다.

제조업은 글로벌 플레이어들과의 격차를 갈수록 좁히고 있는데 왜 유독 금융 부문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금융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자본시장법 개정 작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영세한 국내 증권업계의 성장동력 마련 차원에서 한국형 헤지펀드 육성과 프라임브로커리지 서비스 허용 등을 담은 관련 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시간만 질질 끌다가 본회의 상정조차 못한 채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 때문에 자본시장법 개정에 맞춰 대규모 증자를 단행했던 증권사들은 확보한 자본을 놀려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사정은 이슬람채권(수쿠크)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중동의 풍부한 오일달러를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채권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특례를 신설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2009년 9월 제출했지만 개신교 측의 강경한 반발 때문에 결국 흐지부지 돼버렸다.

국내 자본시장의 인프라 확충이 늦어지면서 우리 증권업계는 매매 수수료에 의존하는 낡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내 증권사들이 헤지펀드를 비롯한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쌓아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국내IB 경쟁력 강화 길 터줘야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사업 비중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IB 등에서 경험축적이 늦어지다 보니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도 부진한 것이다.

물론 정부가 법적인 기반을 갖춰 준다고 해서 국내 투자은행이 저절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개별 증권사들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은 일단 플레이어들이 뛸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잘 뛰고 못 뛰고는 당사자들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과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금융의 꽃이 피게 하려면 토양부터 가꿔 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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