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정욱 서울의대 병리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현재 문제 되고 있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메르스)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발견된 메르스가 동일 질병인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증상이나 전염 경로 등에서 조금 다를 수도 있어서 이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과 중국의 조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이 동일하다고 발표됐다.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결론의 의미는 우리나라의 메르스가 중동 지역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며, 아울러 질병의 특징, 즉 전파 방식이나 치료, 예후 등에서 중동 지역에서의 경험을 참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메르스가 우리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정부의 발표는 중동 지역에서 경험한 메르스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한국의 메르스는 중동에서의 경험과 비교할 때 몇 가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우선 병원에서의 감염 양상이 조금 다르다.
다인용 병실과 응급실에서의 감염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만하다. 한국의 병원에서 6인실, 8인실 등은 아주 일상적이지만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한국의 응급실 특히 대형병원 응급실의 모습은 병원인지 시장 바닥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특성이 감염의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가족과 간병인의 감염이다. 한국에서는 가족이 간병하는 정도를 넘어 온 가족이 문병을 오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이는 환자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염병을 확산하는 주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환자가 여러 병원을 두루 방문해 병원체를 퍼뜨린 것도 우리나라의 병원 쇼핑의 특징을 보여준다.
질병관리본부의 지금까지 초기 대응에 너무 안이했다. 특히 감염자 발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더 많은 사람에 대해 바이러스 스크리닝을 했어야 했다. 100명을 검사해서 10명의 양성 환자를 찾아내는 경우와 10명을 검사해서 8명을 찾아내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감염의 위험이 큰 대상자 10명을 선별하여 검사해 80%의 높은 양성률을 기록했다면 경제적으로 검사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00명을 검사해서 90명이 음성이었다면 낭비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의 경우 진단을 하지 못한 2명이 바이러스를 퍼트리면 초기 검사가 무의미해지고 방역망은 무너진다. 초기에 더 많은 대상자를 검사해 진단되지 않은 환자를 더 줄였어야 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검사를 하면 양성률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완전히 나타난 후에 검사하는 것과 유사 증상이 있는 초기에 진단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이라도 자원과 인력을 아끼지 말고 광범위한 검사를 해서 검역 망을 빠져 나가는 환자, 즉 진단이 지연되거나 진단되지 않은 환자를 줄이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두려움이 두드러진다. 예방 백신이 없고 치료약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메르스에 대한 온갖 괴담도 심각하다. 메르스는 치료되는 병이다. 감기를 치료하는 것이 기침과 가래를 줄이는 약 그리고 해열제를 주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을 쓰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메르스 치료는 폐렴의 진행을 막고 회복을 돕고 호흡기 증상 치료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 (감염자의 80%) 건강했던 사람은 회복이 되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퇴원을 한다. 유전자 변이가 자주 나타나 백신을 개발해도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있지만 불치병이라고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방역과 질병 관리에 대한 투자도 문제다. 음압 격리 시설 등 효율적인 방역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막대한 재정투자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복지 정책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지만 공공 보건에 대한 공공재 투자를 충분히 하기는 어렵다. 복지는 유권자에게 베푸는 것이지만 보건은 국민을 귀찮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다.
한국의 메르스에 대한 기록과 연구가 충분한지도 지금 점검해야 한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에 비하여 학술적 질병 연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하다. 사망한 환자를 부검해 필요한 진단과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질병에 대한 우리나라의 방어 능력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동의 메르스나 한국의 메르스 모두 확진 환자 중의 사망률이 높지만 사망자 수(6명)는 다른 독감에 비해 많은 것이 아니다. 메르스로 진단을 받은 환자의 평균 연령은 54.9세로 장년과 노인에서 병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사망자의 나이는 1명(57세)을 제외하고는 모두 70세 이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메르스 관리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에 대한 감염 차단이다. 노인 인구 증가와 노인 복지 향상에 대한 투자로 노인요양원, 노인병원, 노인복지관이 다수 설립돼 운영 중인데 이들 기관이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취약하다. 젊은이는 균에 노출되어도 증상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에 본인이 모르는 상태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노인 복지 시설에 대한 메르스 방역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가족을 포함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내부 운영 인력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시설의 어르신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자세로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영되는 노인 복지 시설을 메르스로부터 확실하게 차단하지 않으면 심각한 메르스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노인들이야 말로 메르스에 가장 취약하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