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청들이 공공 도로를 재개발ㆍ재건축조합에 팔아넘겼다가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루아침에 주통행로를 잃게 된 인근 주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통에 애꿎은 정비사업까지 지연되며 말썽을 빚고 있다. 22일 각 구청과 업계에 따르면 용산구 효창동에서는 폭 10m, 길이 100m가량의 ‘다예3길’을 놓고 주민들과 재개발조합, 구청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용산구청과 효창3구역 재개발조합이 구역을 양분하고 있는 이 도로를 없애 재개발구역에 포함시키는 대신 조합이 우회 대체도로 등을 신설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안 주변 아파트 등 6,000여가구의 주민들은 “어떻게 구청이 재개발 사업자에게 주민의 공공재산을 팔아넘길 수 있느냐”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길을 애용하는 다수 주민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개발을 위해 굳이 길을 없앨 이유도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예3길은 사실 원래부터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도로다. 경의선 철길과 엇갈리는 다예3길을 방치할 경우 보행자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의견에 따라 구청과 재개발조합이 일찌감치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나중에 해당 경의선 구간의 지하화가 결정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문제가 커지자 용산구청은 일단 재개발 공사를 중단시킨 뒤 양쪽을 중재하고 나섰다. 그러나 주민 요구대로 재개발 계획을 수정하기는 불가능해 적정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서초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배동의 서리풀 재건축 구역에 작은 소방도로인 ‘큰말길’이 포함되자 이 길을 주로 이용해왔던 주변 아파트에서 들고 일어난 것. 주민들은 “구청이 사전 의견수렴도 하지 않은 채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땅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재건축 설계 변경과 도로 매각대금의 지역 환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초구는 수차례 중재에 나섰으나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운 형편. 조합이 원하지 않는 이상 적법하게 승인받은 관리처분계획을 고치기란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충분한 의견수렴이나 민원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 없이 사업허가를 내준 관청에도 갈등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 민원으로 사업이 지연되면 결국 재개발ㆍ재건축조합도 손해”라며 “직접적 권리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인근 주민들의 의견을 사전에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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