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폭락하며 세계 경제가 거덜난 사례 중 단연 으뜸은 1929년 미국 대공황 당시였을 듯 싶다. 자살자가 줄을 잇고 수천개 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미국 경제는 말 그대로 절단이 났다. 그리고 전세계는 공황 상태로 치달았다. 그런데 그 전대미문이 될 것 같던 주가 대 폭락의 기록을 한 순간에 갈아치워버린 사건이 또 일어난 건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87년 어느 가을 날이다. 블랙 먼데이, 음울하게 출발한 10월 19일 뉴욕 증시 다우지수는 하루 만에 무려 508포인트, 22.6%가 대폭락했다. 대공황 당시 다우 38.33포인트, 13%의 낙폭은 게임이 안됐다. 시장을 만신창이로 만든 사태 배경을 놓고 당시 대통령의 특명으로 조직된 브래디 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프로그램 트레이딩’이라는 일종의 자동주식거래 장치에 연계된 주가지수 선물거래에 혐의를 씌웠다. 그러나 그건 핵심을 비껴간 진단이었다. 문제는 쌍둥이 적자 등 미국 경제가 가진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또 하나 강력한 요인은 금리였다. 쌍둥이 적자 해결을 위해 미국이 부랴부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끌어낸 이후 금리와 달러가치가 급락하자 국제자본이 미국의 채권 및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막대한 적자를 해외차입으로 메워온 미국정부는 국제자본을 빨아들이기 위해 금리를 다른 서방 국가보다 높게 유지하고자 했다. 1987년 여름 미국과 독일간 금리 논쟁에 본격 불이 붙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경제 비중이 컸던 독일은 국내 경기 과열을 이유로 미국의 만류에도 금리 인상을 강행한다. 독일에 이어 다음 행동에 들어간 건 일본이었다. 당시 미 재무부 증권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20여개 은행들이 일제히 월가에서 주식을 대 던져 버리고 독일 정부 공채 매입에 나섰다. 대 폭풍에 휩싸인 월가는 한 순간에 초토화됐다. 환율정책 협조가 안 되는 상황 하에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이 독일과 일본의 동반 금리 인상으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면서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회오리는 다시 일본, 영국, 싱가포르, 홍콩으로 파동쳐 갔다.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돈은 대략 1조 7,000억 달러에 달했다. 요즘 세계가 미국의 약달러 밀어붙이기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언뜻 85년 플라자 합의 직후의 모습이다. 각국의 달러 털기가 내년으로 이어지고 미국의 금리인상도 예상보다 가파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경제는 순환한다 했나. 블랙먼데이 당시를 슬슬 닮아가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환율-금리의 3고(苦)가 기다리고 있는 내년, 블랙먼데이가 될지 블랙프라이데이가 될지 세계 금융시장에 언제 또 폭풍이 몰아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바다건너로부터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며 세계 경제의 파티가 끝나 간다는 소리가 들리는 요즘은 무던히도 속 끓어온 한해의 끝 자락이다. “우리에게도 언제 파티가 있었나” 싶은 우리 경제의 내년이 당장 또 걱정이다. 사족(蛇足) 하나. 블랙 먼데이 당일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 뒤뜰 헬리콥터로 걸어가면서 폭락하는 시장에 대해 한마디 했다. “단순한 하나의 시장조정(simply a correction)” 여유 있는 웃음까지 띤 채다. 그리고 그는 취임 두달에 불과한 FRB 새 의장 앨런 그린스펀을 다독거리며 얼마 안돼 미국 경제를 거뜬히 일으켜 세웠다. 이류(二流)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을 지금도 대다수 미국인들은 잊지 못한다. /hj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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