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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실패 감싸지 못하는 대한민국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


현재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은 전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창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자세히 살펴보면 해외의 것을 복제했거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디어 제안자만 실패책임 안아

카카오톡·라인도 알고 보면 최근 페이스북이 20조원에 인수한 왓츠앱이 원조다. 최근 큰 시장을 형성한 소셜커머스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근래 크게 성공한 모바일게임 다수도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물론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개선돼 시장을 만들어가는 IT산업의 특성상 하늘 아래 100% 창의적인 걸 찾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원조라고 전세계에서 명백히 인정받을만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에서 창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나보기 어려운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에 초점을 두고 얘기하고자 한다.

국내의 많은 직장인들은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니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고의 처세술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기존 제품의 수명이 다해가거나 경쟁사에 의해 점유율이 잠식되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요구한다. 그런데 신제품이 실패할 경우 그것을 추진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덮어쓰고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직원들이 믿는 상황에서는 진짜 혁신적인 아이디어, 즉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는 결코 제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요인들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신제품의 실패로 인해 팀이 해체되거나 팀원들이 좌천 또는 권고사직을 당하는 반면에, 신제품이 성공했을 때는 모든 공이 경영진에게 돌아간다. 그런 환경에서 창의적인 시도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는데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도전정신 탓이 아니라 그런 환경과 문화를 조성한 경영진의 탓이다. 그런 조직에서는 아무리 경영진이 창의성을 강조해도 직원들은 하는 척만 할 뿐이다. 실패 때 개인을 비난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해당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전반에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욕을 감소시킨다. 결국 조직 자체가 노쇠해진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끊임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창의적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로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실패의 교훈을 통해 다음번에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이란 결국 조직구성원, 즉 개인들의 집합체다. 창의적 시도를 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금 시도하는 주체가 바로 개인이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의 교훈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방에만 급급 조직 노쇠화 불러

IT업계에서 창의문화를 확립한 대표적 기업인 구글은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 문화를 갖고 있다. 구글은 구성원들의 실패를 처벌하지 않고 실패의 교훈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구글은 제품의 실패를 겪을 때마다 '포스트 모템(검시·檢屍)'과정을 거치는데 이 절차는 실패한 업무 내용을 문서화하고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교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우리 사회와 상당수의 조직에는 '실패하면 끝'이라는 문화가 만연돼 있다. 하지만 경쟁사를 압도할 만한 창의적인 제품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의적 시도를 할 수 있는 문화를 갖춰야 한다. 구성원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패를 인내하고 다시금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런 문화를 조성하지 못한다면 계속 누군가를 모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이상 모방할 대상이 없거나 모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졌을 때 기업의 종말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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