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우샘프턴 미드필더 빅터 완야마의 이 말은 올 시즌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12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주제 무리뉴 감독의 첼시가 10승2무(승점 32)로 1위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2위에는 맨체스터 시티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아스널·리버풀도 아닌 사우샘프턴이 올라 있다. 8승2무2패(승점 26)로 첼시와 6점 차.
2·3부리그를 전전하다 2012-2013시즌 EPL에 복귀한 사우샘프턴은 승격 시즌 14위, 지난 시즌 8위에 이어 올 시즌 돌풍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돌풍이 한풀 꺾일지, 태풍으로 발전할지는 이번주 말을 포함한 3연전에 달렸다. 사우샘프턴은 30일 오후10시30분(이하 한국시각) 홈구장 세인트매리 스타디움에서 13라운드 경기를 치르는데 상대가 지난 시즌 우승팀인 호화군단 맨시티다. 독일 축구통계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맨시티 구단의 시장가치(6,720억원)는 사우샘프턴(2,320억원)의 3배에 가깝다. 다음 달 4일과 9일에는 아스널(8위)·맨유(4위)와의 경기가 잡혀 있다. 초반 12경기를 비교적 해볼 만한 팀들과 싸운 사우샘프턴은 강호들과 연속 대결할 '위대한 도전'에 시즌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지 전망은 사우샘프턴이 강팀들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리라는 쪽으로 기운다. 지난 12경기에서 이미 신흥 강호로서의 면모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12경기 8승은 사우샘프턴의 팀 상황을 돌아보면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사우샘프턴은 리빌딩이라는 기치 아래 여름 이적시장에서 12명을 팔았다. 공격수 리키 램버트, 미드필더 애덤 랄라나(이상 리버풀), 수비수 루크 쇼(맨유)·캘럼 체임버스(아스널) 등 핵심 자원들도 포함됐다. 덕분에 9,500만파운드(약 1,650억원)는 벌었지만 언론들은 사우샘프턴을 2부리그 강등권으로 분류했다.
감독도 바뀌어 개막 2경기를 1무1패로 불안하게 출발한 사우샘프턴은 그러나 이후 10경기에서 4연승 2번을 포함, 8승1무1패를 거뒀다. 초반이기는 하지만 강등권은커녕 우승후보 수준이다. '폭풍 세일' 와중에도 중앙 미드필더의 두 축인 모르강 슈네들랭과 완야마는 붙잡았는데 이들이 잡은 중심 위에서 이적생들이 펄펄 날고 있다. 각각 1,000만유로(약 137억원), 1,400만유로(약 192억원)의 적당한 가격에 네덜란드리그에서 데려온 공격수 그라치아노 펠레와 윙어 두산 타디치가 몸값의 10배도 아깝지 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페예노르트 시절의 스승 로날트 쿠만 감독과 재회한 펠레는 6골로 득점 5위, 타디치는 어시스트 7개로 도움 2위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데려온 골키퍼 프레이저 포스터는 12경기에서 7차례나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알짜 영입의 진수를 보여준 사우샘프턴은 여름과는 반대로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큰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1월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상위권을 지킬 경우 여름에 모은 돈을 겨울에 풀어 톱4를 굳히는 동시에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4위 안에 들면 내년 시즌 챔스리그 출전권을 얻는다. 완야마는 28일 "그렇게 많은 동료들이 떠날 줄 몰랐다.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곧 새 동료들이 왔고 우리 팀은 더 나아졌다"며 "우리 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잘 안다. 지난 시즌보다 높은 순위로 마치면 만족하겠지만 더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적생들의 활약도 한몫했지만 무너지지 않는 사우샘프턴의 핵심 비결은 튼튼한 유소년 시스템이다. 사우샘프턴 유스 아카데미는 개러스 베일(레알 마드리드), 시오 월콧(아스널) 등 무수한 스타들을 배출했다. 베일과 월콧은 최근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뤄지는 곳"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며 사우샘프턴에서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사우샘프턴은 이달 3,000만파운드(약 520억원)가 투입된 새 유소년 훈련장을 개장하기도 했다. 남은 돈으로 내서니얼 클라인, 제이 로드리게스와 재계약하고 이적시장에 나선다는 게 구단의 계산이다. 2012년부터 뛰고 있는 측면 수비수 클라인은 올 시즌 맹활약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지난 시즌 17골을 넣은 로드리게스는 무릎 부상에서 조만간 복귀할 예정이다. 쿠만 감독은 "전체 38라운드가 모두 끝났을 때 우리가 여전히 2위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3위는 가능하다"며 톱4 이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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