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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폴리스 파워 존중해야 법치주의 완성" <br>법조 일원화제도·판결정보 공개등 사법개혁 계속 추진<br>현행 법관평가제 득보다 실 많아… 한국형 모델 만들어야<br>송무 중심 직역 다변화 '변호사 2만명시대' 대비도 필요



"폴리스 파워(경찰 공권력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사법부의 권위가 강하지만 이보다 강력하고 우선적인 것이 폴리스 파워"라며 "사회 곳곳의 법질서 위반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폴리스 파워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만 법치주의가 완성되고 소득 3만달러를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변협을 맡으면서 눈에 띄는 변화는 법조계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는 점이다. 일부 불만도 없지 않지만 그는 "과거처럼 (법조계 현안에 대해) 침묵만 하고 있지 않겠다"며 현안에 대한 의견개진을 계속해나갈 뜻을 내비쳤다. 김 회장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올해 처음 도입해 시행한 사법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법관평가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식 법관평가 모델은 필요하지만 현행 법관평가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회장은 대안으로 법원의 판결문 공개, 법정 내 CCTV 설치 등을 통해 관련 자료를 축적한 다음 10년마다 실시되는 판사 재임용 때 변협 차원의 의견을 내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김 회장은 "현행대로 매년 변호사 1,000여명이 배출되고 오는 2012년께 로스쿨 졸업생까지 합쳐지면 2016년께는 '변호사 2만명 시대'가 도래한다"며 "국내 법률시장의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변호사들이 엄청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그는 변호사 생계 문제를 해결할 장기플랜 마련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주 말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09년 아시아변호사단체장(POLA)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김 회장을 지난 5일 서초동 대한변호사회관 5층 집무실에서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 -변협이 과거에 비해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변협은 법률전문가단체입니다. 따라서 법률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신속하게 제시해 국민 여론을 선도해야 합니다. 선거운동 내내 '더 이상 침묵하는 대한변협이 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종전의 변협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정책을 쓰다 보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조계 관련 현안이 생기면 소신을 갖고 신속하게 의견을 낼 것입니다. 여건만 되면 일주일에 한번 정례 브리핑을 갖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본지가 최근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기획을 내보냈는데 독자들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인 시점에서 법질서를 지키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이로니컬하지만 워낙 기초적인 질서들이 무너진 게 사실입니다. 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적인 이유나 판단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법질서는 지켜가며 주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회나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좋은데 폭력을 쓰고 폭언을 써가며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불편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사법부에 대한 권위가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강력하고 우선적인 것은 경찰 공권력의 권위, 즉 '폴리스 파워'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도 불법을 저지르면 폴리스 파워 앞에서는 가차없는 것입니다. 교통질서를 위반하면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딱지를 떼이는 게 당연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법치주의라는 것은 정치적인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폴리스 파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서울경제신문의 법질서 캠페인은 좋은 내용이라고 봅니다. 폴리스 파워를 무시하고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복면을 쓰고 집회하는 것도 폴리스 파워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폴리스 파워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만 법치주의가 완성되고 소득 3만달러, 4만달러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법원 판결문 공개나 법조일원화 등 사법개혁을 강하게 주장하시는데 법원 분위기는 아직 냉소적인 것 같습니다. 법원을 어떻게 설득해 사법개혁을 이끌어낼 복안입니까. ▦취임 이후 이용훈 대법원장과 두어 차례 만나 변협의 사법개혁 방안을 설명했습니다. 법원도 점차 이해의 폭을 늘려가고 있다고 봅니다. 머지않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법개혁은 국민과 국가에 진정으로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시급한 과제이므로 법원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한편 국회와 정부,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적극 홍보할 생각입니다. 법원이 호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할 성질은 아닙니다.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2년 임기 동안 가정법원과 형사법원의 법관을 나이 많고 경력 많은 변호사로 임용하는 소위 법조일원화제도, 판결정보 공개, 법정 내 CCTV 설치, 법원 내 설명실 및 변호사 공실 설치 등은 꼭 이뤄놓고 나가겠습니다. 전국 법원에 동시에 안 된다면 일부 법원에서라도 시범 적용해보고 난 후 평가를 통해 확대 여부를 결정해도 될 것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올해 처음 도입해 시행한 법관평가제 도입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감지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도입한 법관평가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만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제도화를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법관평가제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인민재판으로 흐를 수 있고 포퓰리즘에 빠져들 수 있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판사들의 집단 반발도 예상됩니다. 한국식 법관평가 모델이 필요합니다. 법원의 판결문 공개, 법정 내 CCTV 설치 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법정에 CCTV를 설치해놓으면 어느 판사가 부적절한 언행을 하겠습니까. 이 같은 자료를 10년 정도 축적한 다음 판사 재임명 시기에 맞춰 변협이 의견을 내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판사 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확보가 필요한데 공개된 판결문이나 CCTV 자료 등을 토대로 변협이 청문회식으로 평가자료를 제출하면 대법원에서도 판사를 재임용할 때 자료로 삼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CCTV는 법정 내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는데요. 피의자의 판사위협이나 증인위협 예방, 법정소란 예방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CCTV를 많이 설치하고 있습니다. 국내 법정에서도 일부 CCTV를 설치해놓고 있지만 '내가 찍히는 건 싫다'는 판사들 때문에 작동이 안 되고 있습니다. CCTV 설치는 법관평가보다 선행돼야 합니다. -변호사 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부 변호사는 생계 문제까지 고민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하반기에 불어닥친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변호사 업계도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변호사 3명 중 1명은 지난해 3,000만원도 벌지 못했으며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최근 3개월간 5건 미만의 사건을 수임했습니다. 지방은 더욱 심합니다. 부산 지역 변호사 수가 처음으로 400명을 넘어서 지난해보다 민사사건 수임건수는 37%, 형사사건 수임실적도 9% 감소했다고 합니다. 국내 법률시장은 미국과 달리 변호사의 직역이 송무 위주로 제한된 상태에서 지난 10년간 변호사의 직역은 확대되지 않고 변호사 수만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지난 8년간 두 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특히 로스쿨 제도의 본격 시행으로 앞으로 변호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라면 6~7년 내 변호사 2만명 시대가 되는데 기존 송무 중심의 변호사 직역을 다변화, 확대시키는 등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대비하는 직역플랜을 만들어야 합니다. 변호사가 많아지면 법치주의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적정수치를 유지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변호사 수가 부족해도 문제지만 넘쳐서 생기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책은 있습니까. ▦사실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다. 우선 변호사들이 스스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변협도 교육센터를 설치해 지원할 것입니다. 국내 변호사들 중 매년 1,000명 정도는 중국 관련 비즈니스로 먹고 살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체계적인 교육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외 변호사들과의 정보교류 확대를 위해 호주나 영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특히 영국 로-소사이어티와의 영 로이어 교류 프로그램, 일본 문부성이 주최하는 한국 변호사 연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협을 통한 대출 지원이나 국선변호인 우선 배정, 소송구조 제도 확충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소액사건담당변호사단을 구성했는데 젊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집중적으로 배정할 예정입니다. -서울 POLA 주제가 국제 경제위기와 법의 지배인데 특별히 이 주제를 택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핫이슈인 동시에 아시아 각국에서 이번 경제위기를 원인으로 법의 지배를 후퇴시키는 경향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아시아 변호사단체장들이 공통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어 이번 POLA 회의를 계기로 경제위기의 극복방법을 찾고 아울러 아시아에서의 법의 지배 원리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이번 회의의 주제로 채택했습니다. -이번 회의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이번 대회는 역대 아시아 변호사협회장 회의 중 가장 큰 규모이고 가장 많은 국가에서 참가해 아시아 각국의 법조계에서 매우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앞으로 변호사들의 역량이 강화될 것으로 봅니다. '소설가 김동리의 아들' 유명세… 실용적이고 과감한 추진력 돋보여 ■ 김평우 회장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무녀도' '등신불'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고(故) 김동리 선생의 차남이다. 변협 회장 선거 과정에서도 '김동리의 아들' 이라는 배경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하고 청주지법 등에서 판사 생활을 한 뒤 미국 뉴욕 변호사를 거쳐 현대증권 부사장, 서강대 법대 교수를 지내는 등 그의 화려한 경력이 부친의 그늘에 묻힌 느낌이다. 그는 사석에서 늘 부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부친인 김 선생의 영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부친은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 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은 실용적이고 과감한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변협 회장으로 취임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변협 내부는 조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와 달리 법조계 현안마다 신속하게 목소리를 내는 게 대표적이다. 과거의 변협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내부 회원들의 의견이 100% 일치된 것만 발표하다 보니 결국 침묵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다. 때로는 외부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싶을 정도로 법원과 검찰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바른말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는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지만 일 처리에 있어서는 과감하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일부에서는 '일방통행식' 이라는 불만도 없지 않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과감한 추진력이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취임 직후 변협에서 제공되는 차를 반납하고 자신의 차를 사용하고 있다. 같은 현대 에쿠스 기종이고 김 회장 차량이 오히려 더 낡았지만 그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리스한 관용차를 반납해 매월 수백만원의 비용을 절약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는 반드시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변협의 1년 예산은 50억원 정도지만 정작 써야 할 곳에 예산을 집중 할애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용을 절감해서라도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뜻이다. 대한변협은 다양한 목소리의 결집체이다 보니 잘해도 본전인 경우가 많다. 김 회장은 '변협이 침묵하는 것은 법조계에는 독' 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그가 어떤 변화를 더 몰고 올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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