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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희 기자의 About Stage] 당신을 사로잡은 뮤지컬 '넘버'는?

극중 노래를 곡명 대신 번호로 표시

'넘버' 장르도 힙합·판소리 등으로 확대

관객 유혹하기 위한 명곡 경쟁 치열

공연 정보를 담은 책자인 '프로그램 북'을 보면 극 중 등장하는 순서대로 노래 번호를 매긴 '넘버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사진제공=뮤지컬 시카고, 캣츠, 지킬앤하이드 프로그램북

'지금 이 순간'(지킬앤하이드), '메모리'(캣츠), '올댓재즈'(시카고)… 작품을 보지 않았어도 멜로디는 귀에 익숙할 수 있겠다. 이들은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보다 더 유명한 '넘버'다.

뮤지컬에선 극 중 등장하는 노래를 '넘버'라고 부른다. 대본 위에 곡명 대신 곡별로 붙인 번호를 표시하는 업계의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뮤지컬은 한 번 등장한 곡이 극 중 변주되어 반복되는 '리프라이즈'가 많아 대본 위에 매번 곡명을 쓰는 것보다 간략한 번호로 대체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클래식이나 팝이 주를 이루던 뮤지컬 넘버는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다음달 4일 국내 초연하는 뮤지컬 '인더하이츠'는 주요 넘버가 힙합으로, 랩 전문가가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나무'는 브로드웨이 원작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국내 정서와 어감에 맞게 랩 가사를 윤색한다. 예컨대 2막 마지막 곡인 '피날레'의 가사 'Sonny's out back, sorting the trash/ as I think about the past with a sack full of cash'는 직역하면 '소니가 뒤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동안 난 돈이 가득 찬 가방을 들고 과거를 회상하네'지만, 한국 공연에선 '소니가 치우는 저 쓰레기들만큼/ 내 가방엔 가득 찼지 돈다발이 한 움큼'으로 바뀐다. 프로듀서 나무는 "단순 번역만 하면 랩의 은유와 리듬이 사라진다"며 "영어 가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글 랩을 만들고, 라임(가사에 음조 비슷한 글자를 규칙적으로 다는 일)에 맞춰 적절한 단어로 대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엔 특정 장르의 음악을 강조한 뮤지컬에 해당 전문가가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판소리가 등장하는 뮤지컬 '서편제'와 '아리랑'은 각각 소리꾼 이자람과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을 주요 배역에 캐스팅했고,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자 성악가)의 아리아가 돋보인 '파리넬리'는 성악가 루이스 초이가 주인공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장르를 넘어 특정 가수의 노래로만 넘버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주크박스 뮤지컬(여러 가수의 히트곡을 모아 만든 경우도 해당)로,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고(故)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그날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까뮈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 서태지의 음악과 엮은 '페스트'도 내년 7월 공개된다.

한 편의 뮤지컬엔 통상 10곡 이상의 넘버가 등장한다. 매년 수십 편이 무대에 오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객을 사로잡기 위한 명곡들의 경쟁은 치열함 그 자체다. 이 많은 노래 중 당신의 마음을 울린 노래는 몇 곡이나 될까. 나만의 '넘버원 넘버'를 꼽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 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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