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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실패는 창조경제 지름길

이기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지금 소치에서는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가파른 슬로프를 질주하며 내려오는 스키어의 멋진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하게 된다. 아마도 스키어들이 그런 모습으로 스키를 타게 되기까지는 수도 없이 넘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실패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같이 성공은 대부분 위험을 무릅쓴 도전과 실패를 겪은 후에 가능해진다.

목표달성 못한 기술과제도 의미 있어

미국·독일·프랑스 등 기술 강국에서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과제도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해 얻은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이를 통해 실패의 반복을 방지하고 새로운 과제를 도출하거나 다른 과제의 성공률을 높이는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또 미국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10월 페일콘(Failcon)이라는 실패 컨퍼런스가 개최된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창업에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서 재기했는지에 관해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 기업인 구글의 새로운 서비스 성공률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지금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포스트잇은 1968년 강력 접착제를 연구 중이던 3M사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의 실패 경험을 몇 년 뒤 회사 동료인 아트 프라이가 교회 성가집의 가죽 표지를 상하지 않게 하는 메모지 구상에 활용하면서 개발된 제품이다.

이와 같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와 산업,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기술 개발과 사업화 과정을 거쳐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실패의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성공한 자에게는 부러움과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지만 실패자에게는 무관심을 넘어 페널티를 부과함으로써 더 이상 재기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선진국의 기술을 습득하면서 실패를 최소화하며 고도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기 위해 도전과 실패 끝에 성공하는 실패의 미학을 살려야 한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중시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 연구개발(R&D) 관리기관들도 창의 아이디어 과제, 혁신 도약형 과제 등의 추진과 아울러 '성실실패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제1회 재도전 컨퍼런스'가 열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재도전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한국형 재도전 환경 구축'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가졌다. 성공적인 R&D를 위해서는 연구에 실패했을 때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재도전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돼야 할 것이다.

도전·창의성 중시하는 환경 조성을

"나는 넘어질 때마다 뭔가 한 가지씩 주워서 일어났다." DNA가 세포 안에서 유전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미국의 생물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가 '30여년간 실험에 실패하면서 지겹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 대답이다. 넘어져보지 않고는 설원을 멋지게 질주하는 스키어가 될 수 없듯이 성실한 실패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실패를 비난하기보다는 재기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일으켜줘야 창조경제가 꽃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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