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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8억년 전 대폭발(빅뱅) 이후 우주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팽창했다는 '우주 인플레이션(cosmos inflation·급팽창)'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최초로 발견됐다. 추가적인 검증만 통과한다면 우주의 탄생과 성장비밀을 밝혀줄 중요한 열쇠로 인류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17일(현지시간) 인터넷 기자회견을 통해 '우주 중력파 배경복사(cosmic gravitational wave background)'를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대기가 안정된 남극에 장비를 설치해 하늘 전체의 약 1~5도 부분을 관측하고 데이터를 3년간 분석한 결과다. 바이셉2(BICEP2)로 불리는 이 장비는 우주가 태어난 지 38만년 후의 구조를 보여주는 빛인 우주배경복사(CMB)의 편광 신호(B-mode)를 관측해왔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 편광을 분석해 초기 우주 급팽창의 증거인 중력파 패턴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중력에 따른 파동을 의미하는 중력파는 시공간(spacetime)에 뒤틀림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CMB에 나타난 패턴이 중력파 패턴이다.
천체물리센터는 지난주부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발표"를 예고하며 주목을 끌어왔다. 연구진을 이끈 존 코벡 천체물리센터 부교수는 "이번 발견이 오류일 확률은 1,000만분의1"이라며 "중력파 패턴의 탐지는 현대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자 우주 탄생의 신비를 풀 단서"라고 강조했다. 중력파는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했으며 어느 순간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급팽창 가설을 입증할 거의 유일한 증거로 여겨진다. 지난 1980년 당시 스탠퍼드대 선형가속기센터(SLAC)에 재직 중이던 물리학자 앨런 구스(67) 교수가 급팽창 가설을 주창한 이래 천체물리학자들은 35년 가까이 실제 중력파 패턴의 발견에 매달려왔다.
급팽창 가설은 빅뱅우주론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다. 빅뱅우주론은 '빅뱅 이후 남은 빛'인 CMB의 존재가 확인되며 이론·실험적으로 입증됐지만 두 가지 난제를 낳았다. 현재 우주는 곡률이 거의 제로인 평평한 우주로 인식된다는 점(평탄성 문제)과 상호 정보교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지만 어디나 똑같이 닮아 보인다는 점(지평선 문제)이다. 그러나 우주가 짧은 시간에 급팽창했다는 가설을 적용하면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급팽창은 빅뱅 이후 10-36~10-33초(1억분의1억분의1억분의1억분의 1초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고 이 사이 우주는 양성자보다 작은 크기에서 1020~1030배(1억배의1억배의1만배 내지 1억배의1억배의1억배의100만배)까지 커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번 발견이 최종 검증되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물론 금세기 과학계 최고 업적 중 하나로 평가를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가정이 거의 정설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이번 발견이 생각보다 높은 에너지 영역에서 이뤄져 단순히 급팽창의 확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까지 검증할 길을 열게 됐다"고 했다. 급팽창 가설의 주창자인 구스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발견 소식을 통보 받고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고 말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카오스 급팽창 모델'을 1983년 제시한 안드레이 린데 스탠퍼드대 교수도 자신의 이론이 확증됐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다만 추가 검증의 완료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급팽창 모델이 들어맞는지를 확인하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견은 급팽창의 존재를 밝힌 것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Planck) 위성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올해 말까지 검증을 완료할 계획이다. 미국·일본 등 각국 과학자들은 2020년대 중반 발사예정인 라이트버드(Litebird) 위성을 이용, 상세한 급팽창 과정을 풀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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