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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기존 단시간근로자 혜택 제외… '시간제' 끼리도 차별 불가피

■ 시간제일자리 느는데 제도는 구멍<br>새 일자리 창출 때만 지원<br>업무 비슷한데 처우 큰 차<br>또다른 사회문제화 우려

방하남(왼쪽 세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여성근로자들과 만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시간제 일자리 확대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과 중장년층에 초점을 맞춰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어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단시간으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는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제공=고용노동부

서울에 있는 한 콜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평소 알던 B씨가 얼마 전 '양질의 시간선택제'를 뽑는 다른 콜센터 회사에 취직했는데 B씨는 정규직처럼 근로기간에 제한이 없고 임금ㆍ복리후생 등도 전일제와 거의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3개월 계약직에 임금도 최저임금 4,860원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그가 보기에 하는 업무 자체는 B씨와 큰 차이가 없는데 처우는 이렇게 차이가 나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조심스레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더니 "시간선택제가 뭐냐"는 답만 돌아왔다.

A씨는 "같은 시간제에 업무도 비슷한데 처우가 확연히 차이가 나니 황당하다"며 "정부가 양질의 시간선택제를 만드는 건 좋은데 기존 시간제 일자리의 처우에 대한 대책도 있어 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13일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내년부터 시간선택제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전일제와 차별이 없는 근로조건을 보장하는 양질의 시간제를 확산시켜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간선택제 정책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기존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시간제 근로자와 시간선택제 근로자와의 차별 문제다. A씨의 경우처럼 같은 직종,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처우에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존의 시간제 일자리의 처우는 근로감독을 통해서 개선해나가겠다는 계획이지만 말처럼 쉽게 될지는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는 1년에도 수차례 시간제와 아르바이트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감독ㆍ감시하고 있지만 이들 사업장 근로자의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3월 현재 전국의 시간제 근로자는 182만6,000명이다. 공공기관에서도 7,800여명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간제인데다가 근로조건도 전일제와 비교해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존에 시간제 근로자를 쓰고 있던 사업장에서 시간선택제 지원 요건에 맞게 근로조건을 개선해도 정부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은 새롭게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근무기간에 제한이 없고 ▦최저임금의 130% 이상 임금을 지급하고 ▦근로조건이 전일제 근로자와 근로시간에 비례해 차별이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면 해당 근로자 임금의 절반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간선택제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은 물론 기존 시간제 일자리의 질도 올리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라며 "시간제 일자리의 근로조건을 개선한 사업장을 지원 혜택에서 배제한다면 기존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올리는 것이 힘들어질뿐더러 시간제와 시간선택제 간의 계층화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존 시간제 일자리 개선 정책이 보이지 않는 시간선택제 정책이 발표되자 기존 파트타임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시간선택제는 귀족시간제, 우리는 평민 시간제"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민간에서 시간선택제를 적극 도입할 만한 유인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이 시간제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전일제에 비해 고용유연화가 용이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고용유연화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업이 시간제를 적극 활용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근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전일제의 절반을 일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도 훈련비ㆍ복리비 등 간접비용은 전일제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 인건비는 전일제의 절반이 아니라 60% 수준"이라며 "시간선택제가 이처럼 비용도 많이 들고 전일제처럼 고용 조정도 쉽지 않다면 나중에는 기업들이 시간제 채용을 꺼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시간제가 활성화된 네덜란드ㆍ독일 등은 시간제 근로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고용 유연화를 열어줬기 때문에 기업이 시간제를 적극 도입할 수 있었다"며 "최소한 복리후생 같은 경우 노사 합의에 의해 보장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등의 유연화 장치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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