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의원은 내심 억울하거나 재수 없게 걸렸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원론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포르노를 본다는 게 문제는 아니다. 서적과 잡지ㆍ영상물 등 모든 포르노그래피를 합법화한 나라도 적지 않다. 사회적으로 개인의 관음증보다 집단적 관음증이 더 나쁠 수도 있다. 잠시 누드사진을 검색해본 개인적 행위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뉴스로 전파돼 도마 위에 오르는 과정을 광기 어린 집단적 관음증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포르노는 치명적인 정치적 함정을 깔고 있다. 근대시민사회를 등장시킨 프랑스 대혁명조차 포르노와 무관하지 않다. 혁명가들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성적 추문을 의도적으로 생성하거나 방조해 왕권의 권위를 흔들었다. 왕비의 육체에 누구나 접근하듯이 국가 권력에 다가설 수 있다는 환상을 심은 셈이다. 프랑스 혁명사의 권위자인 린 헌트는 '포르노와 혁명은 불편한 동침자'라고까지 말했다. 대중의 집단적 관음증이 갖는 폭발력은 이토록 크다.
▲우리 조상들은 아예 포르노의 싹을 잘랐다. 영조 때 학자 박양한의 '매옹한록'에는 인조가 명나라 사신이 올린 성행위 묘사 상아조각을 깨부수고 관심을 갖는 신하는 출세 길을 막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같은 동양권이라도 조선의 춘화는 노골적 묘사의 수위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낮았다. 억제됐던 탓일까. 영국 BBC가 발행하는 잡지 '포커스'는 세계에서 포르노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국회의원까지 거기에 동참하는 세상이라니…. 과테말라의 포르노 의원 중 한 사람은 올해 초 의회부의장까지 올랐다. 후진국답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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