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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1부. 낡은 부동산정책 틀 바꿔라 <2>민간-공공 역할 분담 필요

민간부문 가격·공급규제 없애고 정부는 주거복지 힘써야<br>다양한 계층 주택 건설 위해 건축비 현실화 등 적극 고려<br>중산층 대상 임대주택 등 민간에 맡겨 '선택과 집중'<br>주택기금 재원부족 우려 전·월세대출 기능도 넘겨야

강남지역의 일부 고급아파트는 까다로운 청약제도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주택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20가구 미만의 소규모로 공급된다. 매매가격이 50억~80억원에 달하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고급아파트. /서울경제DB


서울 강남권에서 고급 아파트를 주로 지어온 A건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20가구 이상의 단지를 공급해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20가구가 넘으면 주택법상 분양승인 대상이어서 가격에 통제를 받는 것은 물론 청약통장에 가입한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순위별 접수를 받아야 하는 탓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수요층이 한정된 고가 아파트를 무주택자에게 무조건 우선 분양하라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4·1 부동산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2016년까지 공공분양주택을 기존 계획보다 11만9,000가구 줄이고 감소분을 임대주택으로 돌리기로 했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보금자리주택이 민간분양시장 침체의 원인이 됐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주택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부 주도의 현행 주택공급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주택공급제도는 공공이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자율성을 침해하는 제도"라며 "주택시장에서 민간ㆍ공공 부문의 경계를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거 다양화 위해 공급 규제 걷어내야=주택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는 만큼 주택 공급에서도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 부문은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공공정책 실현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엄격한 제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지만 민간 부문은 업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9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 더힐' 아파트는 애초 분양아파트로 공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 탓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분양가격을 올릴 수 없게 되자 시행사는 5년 민간임대아파트로 공급 방식을 바꿨다. 3.3㎡당 임대료만 3,000만원이 넘었지만 임대청약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 아파트는 이달 말로 임대의무기간의 절반을 채워 세입자와의 협의를 통해 일반분양아파트로 전환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분양전환가격이 사상 최고가인 3.3㎡당 4,500만원 안팎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남 더힐'이 분양가상한제와 청약제도를 적용 받지 않고 애초부터 분양아파트로 공급됐다면 수요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분양전환 절차를 피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시행사가 자신이 보유한 토지에 소수의 수요층을 대상으로 지은 아파트를 주택이 부족했던 시기에 만들었던 공급제도를 적용하면서 비효율성만 키운 셈이다.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공공 부문이 주로 공급하는 중소형아파트는 서민과 실수요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더라도 중대형이나 고가주택에 대한 가격 결정구조나 공급 시스템은 시장에 맡기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효율적 주거복지 전달체계 개선에 주력=임대주택은 과거와 같이 저소득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영구임대주택이 필요한 계층이 있는 반면 이미 서울 용산이나 강남 등 일부 주거 선호지역에서는 고액연봉자나 외국 기업 주재원 등이 주로 이용하는 월임대료가 1,000만원 이상인 임대주택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층별 수요에 따라 다양한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하도록 임대주택시장에서도 공공과 민간의 역할 정립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사각지대에 놓인 소득 중간계층에 대한 임대주택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정부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은 영구임대주택, 재개발ㆍ다가구 매입과 전세임대주택, 그리고 국민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 등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공사 등 건설 관련 공기업이 임대주택 건설을 주로 맡고 있지만 문제는 재원(財原)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임대주택 건설을 위해서는 민간에 떼어내줄 수 있는 부분은 떼어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요구된다. 민간이 보다 적극적으로 임대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건축비 상향 등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반면 공공 부문은 저소득층 주거복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주택이 필요한 지역에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수요 분석이 필요하다"며 "과거 대규모 택지지구에 집중해서 짓는 방식이 아닌 소규모 임대주택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 부족 우려 커진 국민주택기금 재정비해야=정부 주택 정책의 '만능 열쇠' 역할을 하는 국민주택기금제도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은 대규모 주택건설 자금을 확보하고 공급할 목적으로 1973년 국민주택자금계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치됐지만 현재는 국민주택건설지원은 물론 택지개발자금지원, 주택구입자금, 전월세자금대출, 노후주택 장기수선충당금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청약제도가 무의미해지고 재원 마련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금사용처가 제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금의 본래 기능에 맞게 임대주택을 비롯해 공공주택정책에 부합한 정책기금으로 사용하고 전월세자금이나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민간 금융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소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국민주택기금은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효과적으로 주택정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민간 금융시장이 발달한 만큼 공공정책 이외의 분야는 민간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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