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봐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 남은 세 자녀에게도 똑같이 가르칠 겁니다." 양양의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갑판까지 나왔다 남은 친구들을 구하러 다시 선실로 갔다가 변을 당한 양양이기에 '친구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법도 하지만 아빠는 오히려 세월호 이후에 학교 교육이 바뀌고 있다며 걱정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교과서 바른생활처럼 봉사와 배려, 질서를 가르쳤다면 이제는 '일단 살고 봐라'를 가르친다고 한다. 양씨는 "그 말은 배려할 필요도 없고 양보할 필요도 없다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늘 반장을 도맡아 하고 공부도 잘했던 어린 딸이 받아온 수많은 상장 중에 선생님들이 뽑은 '바른학생상'을 제일 기쁘게 여겼던 아빠다.
온유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던 아빠는 자식의 죽음이 이처럼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온유 장례식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까봐 먼저 웃고 일일이 찾아온 사람들을 챙겼던 아빠는 요즘 남몰래 앓는다. 양씨는 온유를 잃은 아픔을 두고 "멍석말이를 하는 것 같다"며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골병이 든다"고 했다. 아빠니까, 가장이니까 참아온 아빠는 그래서 아프다. 아빠가 하루종일 일을 보는 컴퓨터에 바탕화면에는 '온유'라는 폴더가 생겼다. 온유가 학교 강당에서 부른 팝송, 수학여행 가기 전 연습한 춤, 교회 친구들과 꾸렸던 무대 영상을 돌려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사춘기가 돼도 그 흔한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늘 동생과 친구들에게 양보하던 온유는 배울 게 참 많은 딸이었다.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온유가 죽기 전 SNS에 남긴 글은 많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아빠는 이것을 온유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한다. 아빠는 "사실 제 어머니께도 부고를 못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온유 이야기를 듣고 이틀만 진행한 장례식에 1,500명이 와서 온유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며 온유 때문에라도 더 좋은 일을 하며 더 감사히 살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했다.
세월호 100일을 맞은 지금 아빠는 더 마음이 급해진다. 온유가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세월호 사고 이후 진행된 게 없어요. 매일 허탈해지고 오늘은 또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나. 그런 게 제일 아쉽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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