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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 이렇게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이 지난 3월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부활하고 순환출자 금지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후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경쟁법센터와 행정대학원 시장과정부연구센터가 지난 11일 공동 개최한 '대기업집단정책의 새로운 모색'세미나에서 상반된 주장을 하며 날카로운 공방을 펼친 두 전문가의 견해를 싣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ㆍ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

총수일가 지배권 승계·경제력 집중

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제 수술을


경제 민주화를 위해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재벌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재벌 문제는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에서 총수일가의 지배권 승계와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초래되는,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이 되는 법ㆍ제도의 붕괴와 불공정경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를 대기업 문제나 대기업-중소기업 간 하청 문제로 둔갑시키는 것은 재벌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호도할 뿐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재벌의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재벌 계열사 간 또는 계열사와 총수일가 간의 출자와 내부거래, 그리고 기업집단의 자금력을 이용한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를 도덕적 교화나 중앙집권적 통제장치로 제어할 수 없음은 인류 역사가 증명한다. 시장경제체제는 사익 추구라는 에너지를 사회 전반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인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줌으로써 사회적 이익과 정합성을 가지는 합법적 사익 추구 행위만 허용하자는 것이다.

시장경제체제는 선험적 존재이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천부의 인권처럼 신성시돼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현대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권ㆍ법치주의ㆍ주식회사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작동돼야 한다. 사유재산권이 확립돼야 개별 경제주체들이 가격신호와 기술혁신 활동을 통해 필요와 능력을 참되게 드러낼 유인을 가진다. 그런데 사유재산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실체법적 규정의 문제를 뛰어넘어 절차적ㆍ실질적으로 보호됨을 의미한다. 특히 수평적 계약관계에서의 보장뿐 아니라 사회ㆍ경제ㆍ정치적 지위가 우월한 상대와의 관계에서 사유재산권 보호가 절실하다.

재벌총수일가의 지배권 승계ㆍ강화 과정에서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부정하고 사회ㆍ경제ㆍ정치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분식회계ㆍ배임ㆍ횡령 등의 범죄가 저질러진 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이러한 명백하고 주요한 범법행위에 대해 법원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시장경제의 근본 법ㆍ제도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시장경제란 형해화된 수식일 뿐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에 재벌의 기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 역시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정치적 민주화 달성은 경제력 집중과 지배권 승계라는 사익추구 욕구를 가진 재벌에 대한 정치권력의 통제가 사실상 사라지는 효과를 부수적으로 낳았으며,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과 지배권 승계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계급화를 동반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경제 민주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형해화를 막기 위해서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실효성 있는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사업지주회사 허용 같은 현행 지주회사 제도의 맹점 개선을 포함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구조적 개혁 없는 재벌개혁은 재벌 문제의 근본을 치유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벌의 반시장경제적 사익 추구에 불편을 줄 뿐인 선거철 정치 행사로 귀결될 것이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現소유지배구조는 경영환경 적응

개혁대상으로 밀어붙이지 말아야


요즘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 대학 연구센터 등에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유지배구조가 무엇이며 어떤 경로에 의해 변하는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소유지배구조란 누가 회사의 의결권을 몇 퍼센트씩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예를 들어 A사의 지분을 대주주 X가 5%, Y사가 10%, 기관투자자 Z가 85%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 사실 자체가 A사의 소유지배구조이다.

Y사가 A사의 지분을 10% 갖게 된 이유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Y사가 A사 설립 때 10%에 해당하는 자본금을 납입했을 수도 있고, 설립 당시에는 100%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추가로 필요한 자본을 납입하지 못해 지분이 10%로 줄었을 수도 있다. A사가 Y사에 진 빚을 갚지 못해 A사 주식을 대신 받았을 수도 있고, Y사가 정부의 구조조정 압력에 못 이겨 A사 지분을 일부 인수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현재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는 회사 설립 때부터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경영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Y사에 "왜 A사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고 따지며 A사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대주주 X에 "A사 지분을 왜 5%만 가지고 있느냐"며 비난한다면 어떨까. Y사나 대주주 X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압력에 의해 A사의 소유지배구조가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됐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 중 몇 개 기업은 특이한 소유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A사가 B사를 소유하고 있고 B사가 C사를 소유하고 있고, C사는 다시 A사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그 예다. 이를 환상형 소유구조라고 한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대기업집단의 대주주가 이를 처음부터 계획해 현재와 같은 소유지배구조가 됐다고 본다면 대기업집단의 대주주를 신격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에서 예로 든 A사가 C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돼 원금을 갚는 대신 A사 주식을 C사에 줬을 수 있다. 이 경우 A사와 B사ㆍC사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상형 소유구조를 갖게 된다. 즉 환상형 소유구조 역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순환출자를 이용해 편법적인 경영권 상속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편법적으로 경영권 상속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순환출자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런 편법ㆍ탈법적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면 검찰이나 국세청이 그런 호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순환출자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지분을 제공하지도 못하며, 순환출자가 이뤄진 경우 그룹 전체의 부도 위험이 높다는 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대규모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는 기업이 외부 경영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형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마치 거대 악의 증거인 양 왜곡하며 대기업집단을 죄인시하고 개혁 대상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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