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공공기관들은 중소기업들이 제조한 물품을 구매할 때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원칙적으로 계약이행능력심사를 통해 적정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동안 물품의 경우 2억1,000만원 미만에 대해서는 구매시 최저가 입찰을 적용해왔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대다수 중소기업이 저가 출혈경쟁에서 벗어나 적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억1000만원 미만물품 적용해제 환영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많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턱없는 가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이윤은 물론 직원 월급처럼 시급히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이 아니라 더한 일에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소기업·소상공인일수록 그랬고 불경기일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예정 가격의 절반 이하로 낙찰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한 초등학교 졸업앨범 입찰에서는 최종 낙찰가가 1원으로 떨어진 웃지 못할 일까지 발생했다.
공공기관 일선 구매담당자들이 최저가낙찰제를 많이 활용한 실제 이유는 회계 감사를 피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구매 대상 물품의 특성과 상관없이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낙찰 가격의 높낮이만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뿌리 깊은 감사 관행은 공공기관 구매담당자들이 최저가낙찰제에 의존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최저가낙찰제가 실제 예산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윤을 남기고 존속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하는 기업 속성상 실제 납품 과정에서는 수주 가격을 고려해 제품 사양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저가낙찰제는 사회적 약자인 소기업·소상공인들의 피해만 키우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리한 저가 입찰경쟁으로 마진이 줄어든 경우 하도급 관행이 공정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원자재 납품업체 등에 전가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오히려 기술력 있고 우량한 업체들의 수주난을 가중시키며 이들을 시장에서 먼저 퇴출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단순히 최저가 여부를 기준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눈앞의 입찰가격보다는 사후 추가 비용 발생이나 서비스·품질 등을 종합 고려해 가격 대비 최고가치(value for money)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합리적 구매시스템으로 출혈경쟁 막아야
다행히 정부가 이번에 2억1,000만원 미만 중소기업 제조 물품 구매에 대한 최저가낙찰제 원칙을 폐지했지만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2단계 경쟁'이나 '규격·가격 분리입찰'에서는 최저가 문제가 남아있다. 조달청이 일정기준의 다수 기업과 단가계약을 체결하면 공공기관이 별도의 계약을 하지 않고 온라인 나라장터 쇼핑몰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다수공급자계약제(MAS)와 관련해서도 지나친 가격경쟁에 대한 우려가 많다. 또 공사 부문에서는 300억원 이상 공사에 대한 최저가낙찰제 원칙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마진을 기대할 수 없는 최저가낙찰제 방식으로는 기술개발과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의 확산을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최저가낙찰제 폐지가 정착될 수 있도록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적정가격으로 최고 가치를 구매하는 합리적인 구매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대 시행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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