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환율보고서는 "일본이 경쟁력을 목적으로 통화가치를 내리거나 환율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던 일본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돼 당시 99엔까지 치솟았던 엔ㆍ달러 환율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는 다시 '일본의 정책은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한 것'이라는 면죄부를 줬고 다시 엔ㆍ달러 환율 흐름은 상승세로 돌아서 결국 9일(현지시간) 100엔을 돌파하기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날 엔화 약세는 미국의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5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미국 경제지표의 호조가 작용했다. 그러나 엔ㆍ달러 환율이 급등한 기본적인 요인에는 일본의 무제한적 통화완화 정책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엔ㆍ달러 환율이 120엔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만큼 미국이 지속적으로 엔화 약세를 용인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인 자동차 등 미국 내 제조업체들의 반발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크라이슬러,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빅3'가 회원으로 있는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이날 성명에서 "일본의 환율조작(currency manipulation)이 새로운 단계에 다다랐다"며 "미 의회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밝혔다. 또 성명은 "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은 미 수출과 일자리를 줄이게 되며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포함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엔저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의 비판 역시 가시화하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 약세는 만병통치약(panacea)이 아니다'라는 기사에서 엔 약세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조차 그동안 제조공장들을 상당 부분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엔 약세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에너지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역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직접적으로 엔 약세를 유도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한 것은 아니더라도 엔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4대 교역 파트너인 일본의 부양책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본 경제의 장기적 회생을 위해서는 고강도 구조조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사설에서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의 경기회복 노력은 지지하되 환율 약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 통화완화 정책과 더불어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에 바탕을 둔 근본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윈 트루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환율보고서가 나온 후 "미 정부는 일본 경제 불황 타개를 위한 아베노믹스의 초점이 대외 수출 확대가 아니라 국내 경기 부양을 통해 이뤄지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이 같은 입장에서 10~11일 영국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서 엔화 절하를 예의 주시할 것이며 일본의 추가적인 구조개혁을 촉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동차 부문 등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 역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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