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증가율은 지난 2010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다. 올해 대규모 추경편성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불어나 나라살림 규모를 한껏 늘릴 수 없는 탓이다. 당정이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나라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올 상반기에만도 무려 46조원의 재정적자를 봤다.
예산 증가율을 최대한 억제했지만 내년에도 재정적자를 피할 길이 없다. 총수입 규모에 따라 적자폭은 달라지겠지만 2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부진으로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복지 분야를 비롯한 대통령 공약이행용 지출이 늘어난 게 결정적이다. 이렇게 되면 2008년부터 7년 연속 적자예산 편성이다. 설령 낙관적 시나리오인 4% 성장을 달성해도 재정사정은 달라지는 게 없다.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극복하는 데 재정이 적절히 뒷받침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해온 덕분에 위기 때 나라 곳간을 풀어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만성화한다면 재정의 경기안전판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년 예산안이 딱 그 짝이다. 당정은 재정적자를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예산만큼은 최대한 증액하겠다고 강조한다. 말은 좋지만 어정쩡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경기진작도 안 되고 재정건전성도 지키지 못하면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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