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어 2차 감염자에 의한 3차 감염이 이뤄진 주요 병원으로 지목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이 평택성모병원에 이어 또 다른 메르스 확산의 거점병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평택성모병원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 등의 지역 주민에게 메르스가 전파된 것과 달리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드는 전국구 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전국적으로 메르스를 확산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와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을 통한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2차 유행 진원지 되나=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메르스 1번 환자를 최초로 진단하며 메르스의 국내 유입을 처음으로 확인한 바 있다. 병원 측은 1번 환자가 응급실 내원 시 폐렴증상을 보이며 중동(바레인) 여행력이 있었던 점을 주목해 메르스를 의심한 후 즉각 응급실 내 음압시설을 갖춘 독립 진료 공간으로 격리 조치했고 이 환자의 검체를 채취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1번 환자와 같은 시간대 응급실에서 진료 받았던 환자 285명과 의료진 등 직원 193명을 확인해 메르스 노출 가능성을 통보하고 격리 조치했다고 삼성서울병원 측은 밝혔다. 이후 24일부터 응급실을 찾는 모든 폐렴 환자에 대해 메르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료를 했다. 이런 조치를 취한 결과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지날 때까지 1번 환자로 인한 2차 감염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27일 문제의 평택성모병원을 거쳐 이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던 14번째 확진 환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7일 현재 추가 확진된 메르스 환자 14명 중 10명이 이 14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 64명 중 17명이 이 병원의 3차 감염자다. 감염자 중에는 이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의료진도 포함돼 있다. 당시 이 환자의 옆에 있던 환자를 진료했다가 감염된 이 병원 의사이자 35번째 확진 환자도 이 환자와 직접 접촉이 없었으나 감염된 것을 감안할 때 같은 공간에 있었던 다른 의료진과 환자들도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 병원을 찾은 환자의 대부분이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잘되지 않은 만성질환자와 노인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자들이 많아 감염 우려 가능성이 크다. 자칫 평택성모병원과는 차원이 다른 급속한 확산과 4차 감염까지 나타날 수 있다.
보건당국은 이 병원 응급실에 대해서도 평택성모병원과 같은 방문자 전수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14번 환자 응급실에서 3일간 머물며 슈퍼 전파자 역할=삼성서울병원은 병원 내 CCTV 등을 분석해 3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는 14번째 환자에게 노출됐던 병원직원과 환자들을 찾아 격리 조치하는 등 추가감염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를 퍼뜨린 첫 전파자로 지목되는 14번 환자(35)와 접촉해 격리된 사람은 의료진 등 직원 218명과 환자 675명을 합쳐 893명이다. 또 14번 환자에게서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료진·환자·방문자 17명에게 연쇄 노출돼 격리된 사람은 715명(의료진 207명·환자 508명)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14번째 환자에게 감염된 60번 환자(간호사)와 62번 환자(의사)에게 노출됐던 의료진과 직원도 563명에 달해 현재 2,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격리 조치되고 있다. 격리 조치자는 병원과 보건당국의 조사에 따라 더욱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메르스 관련 기자회견을 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다수에게 3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는 14번째 환자의 경우 첫번째 환자 같은 '슈퍼 전파자'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이날 14번째 환자가 입원했을 당시의 상황과 응급실 내 자세한 동선도 공개했다. 송 원장은 "14번째 환자가 입원 당시 중동 여행력이나 메르스 노출 이력이 확인되지 않아 메르스 진단을 내릴 수 없어 격리하지 않았다"며 "이 환자는 당시 호흡곤란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 환자는 지난달 27일에는 응급구역 2라는 존에, 28일에는 중앙존, 29일에는 입원 대비존에 있는 등 모두 3번 정도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측은 또 응급실 내 해당 구역에 대한 소독 등 방역조치를 취해 병원 내 다른 부서나 공간으로의 확산될 우려는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재 일반 환자들에 대한 외래진료와 입원·수술·검사 등은 정상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VIP실에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