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석유장관회담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하락세를 용인해 지난 1986년의 '유가 전쟁'을 재연하려 한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OPEC이 유가 기준으로 삼는 북해산 브렌트유는 25일 내년 1월 인도분이 전날보다 1.7% 하락한 배럴당 78.33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2.2% 하락한 배럴당 74.09달러로 2010년 9월 이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WTI 가격은 연고점인 6월25일 102.04달러에서 31% 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러한 저유가 상황이 1986년 사우디발 '유가 전쟁'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두둑한 외환보유액을 앞세워 저유가를 용인하는 듯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동이 당시 산유량을 크게 줄였다가 돌연 대량 증산에 나서는 바람에 유가 폭락과 경쟁 산유국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전 세계 원유시장의 대표적인 '스윙프로듀서(전 세계 시장 공급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큰 국가)'다. 사우디는 1985년 당시 900만배럴을 넘기던 일일 산유량을 3분의1 수준인 317만배럴까지 줄였으나 그해 12월 돌연 원유시장점유율 회복을 외치며 증산에 나섰다. 그 결과 유가가 이듬해 3월까지 넉 달 동안 67% (브렌트유 기준) 폭락했고 미국 석유 업계도 큰 타격을 입고 어쩔 수 없이 산유량을 7~8% 줄여야 했다.
블룸버그는 원유의 공급과잉에도 미국이 셰일붐을 타고 증산에 나서고 있어 유가 하락이 계속될 경우 또다시 미 석유 업계가 신용경색 등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주요 석유기업 61곳의 총부채는 1,990억달러에 이르며 이미 저유가에 타격을 입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유가 하락은 OPEC 석유장관회담을 목전에 두고 열린 4개 산유국 회동에서 감산에 대한 의견 접근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부채질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OPEC 회원국인 사우디·베네수엘라와 비회원국인 러시아·멕시코 에너지장관은 이날 빈에서 회동했지만 감산에 대한 의견 접근을 이루지는 못하고 3개월에 한 번꼴로 회동을 정례화하는 데만 합의했다. 이번 회동에서도 사우디가 어떤 입장을 나타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4개국 회동은 OPEC이 감산 문제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OPEC의 감산 결정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외신들도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OPEC 회원국들이 결국 3년 전에 정했던 생산량 상한선인 일 3,000만배럴을 엄격히 준수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가 오르려면 OPEC이 적어도 하루 원유 생산량을 최대 150만배럴 줄여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반대로 로이터통신은 "이번 회동을 계기로 사우디가 OPEC 비회원국도 연계된 감산을 지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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