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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세계 역사를 바꾼 후추의 힘

그림은 15세기 초 동방 여행가들의 기록인'세계의 불가사의에 관한 책'에 등장하는 상상도다. 후추를 재배하는 것은 현지인 노예들이지만 그 결과물은 권력자인 왕에게 진상됐다. /원본소장=파리국립도서관, 사진제공=도서출판 따비


향료(香料)를 가리키는 스파이스(spice)와 특별하다는 뜻의 스페셜(special)은 어원이 같다. 즉 향신료인 스파이스는 특별함을 상징하며, 이 특별한 매력의 원천은 희소성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의 귀족과 왕족, 부자들은 향신료를 남용함으로써 권력과 부를 과시했고, 반대로 상인들은 왕과 황제의 채무 증서를 향신료와 함께 불태워 없앰으로써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었다.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쓴 이 책은 ‘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라는 부제와 함께 유럽인들이 향신료에 대해 쏟은 열정과 에너지를 추적하고 있다. 잘 알려진 향신료 전쟁은 16~17세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아시아를 두고 펼쳐진 싸움이지만 그보다 앞선 수 천년 전부터 향신료에 대한 욕망은 뜨거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람세스 2세의 미라에서 후추 몇 알이 발견된 것은 이미 기원전 1200년대에 이집트와 후추 원산지인 아시아 인도 남부지역의 교류가 있었다는 고고학적인 증거이다. 동시에 후추가 파라오의 육체를 불멸로 보존하기 위한 방부제로 쓰였음을 입증한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유혹하던 파리스는 “당신이 가는 곳마다 시나몬 향이 타오르고…”라는 말로 그녀에게 ‘여신 대접’을 약속했다. 실론(스리랑카) 섬이 원산지인 시나몬 향은 고대인들에게 ‘신들의 음식’이었다. 로마인의 경우 시나몬의 연기가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생각했다.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향신료를 시신에 바르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따르는 길이라고도 믿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향신료가 가져다 준 경제적 부(富)는 단순한 재화적 가치를 넘어 고대부터 유럽인이 스파이스에 부여했던 다양한 의미와 상징으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한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는 향신료의 전파길은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미지의 세계였으며 신들의 세계 혹은 천국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처럼 향신료는 영혼의 조미료이자 특별한 식재료, 건강을 위한 처방이었지만 ‘사랑의 묘약’으로 은밀히 사용됐다. 베네딕트회의 수도자이자 탁월한 의학자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콘스탄티누스’가 남긴 조언에 따라 발기부전에는 생강ㆍ후추ㆍ갈랑갈ㆍ시나몬과 여러가지 허브로 만든 미약(媚藥)을 점심과 저녁 식후에 복용했고, 아침 발기를 위해서는 우유에 담근 클로브를 먹었다고 한다. 이 민간요법은 18세기까지 애용됐다.

저자는 책의 집필을 위해 성서,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풍자시, 요리책과 의학서, 유럽의 고전문학, 아랍의 문헌, 탐험가들의 항해일지를 파헤쳐 향신료가 지닌 매혹의 정체를 밝혀냈다. 저자는 소수 만이 누리던 스파이스의 신비감과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그 매력도 줄어들었다고 정리하면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책 말미에는 “가장 인기있는 탄산음료인 코카콜라 맛의 비밀이 시나몬과 넛메그”라는 마크 펜더그래스트의 저서를 인용해 우리가 모르는 새 매혹당해 있는 향신료의 힘을 일깨운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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